한겨레신문 칼럼(삶의 창)

누가 이익을 보는가(2014년 9월 20일)

divicom 2014. 9. 20. 08:20

'아름다운 서당'의 영리더스아카데미(Young Leaders' Academy)에서 대학생들과 책을 읽은 지 여러 해가 되었지만 회의가 가시질 않습니다.  한달에 한 번 있는 수업에 가려면 제법 공부해야 합니다. 학생들이 보통 세 권의  고전을 읽고 오니 저는 그 책들을 읽고 좀 더 관련 지식을 알아 가지고 가야 합니다. 오전에 세 시간 동안 고전 공부를 하고 점심을 먹은 후엔 영어 공부를 합니다. 


아침 9시 30분부터 오후 3시까지 수업한 후 집으로 돌아올 때는 녹초가 됩니다. 학생들과 뭔가가 통하는 느낌이 들 땐 피로가 덜하지만 학생들이 저보다 늙어 보일 때는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 걸까?'하는 의문이 일어납니다. 그래도 드물게 눈을 반짝이는 친구들이 있어 인연을 이어가지만 언제까지 '선생 노릇'을 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습니다. 

일 주일 전엔 탐라YLA 친구들과 '목민심서'를 읽었습니다. 오늘 아침 한겨레신문 '삶의 창'에 실린 글에 그 얘기를 썼기에 여기 옮겨둡니다. 글 제목 '누가 이익을 보는가'는 글에 등장하는 대혁씨가 수업 중에 제기한 의문 그대로입니다. 현대혁 씨, 고맙습니다.



누가 이익을 보는가


대혁씨, 우리가 ‘아름다운 서당’의 영리더스아카데미에서 만난 지 반년이 지났네요. 지난 주말 병원에 다녀오느라 수업에 늦었지요? 운동하다 다쳤다니 다시는 그런 일이 없게 조심하세요. 다치는 건 순간이지만 낫는 데는 긴 시간이 걸리니까요.


그날 우리는 다산 정약용의 <목민심서>를 읽었지요. 조별로 책의 내용을 정리해 발표한 후 토론시간이 되었고 사회자가 토론 주제를 제안하라고 했지만 아무도 입을 열지 않더군요. 우리 공직사회의 부패와 태만은 세계적으로 유명한데, 참된 공직자상을 제시한 목민심서를 읽고 침묵하는 친구들이 이해되지 않았어요.


“무릇 재해와 액운이 있으면 불타는 것을 구해내고 물에 빠진 것을 구해내기를 마땅히 자기 집이 불타고 자신이 물에 빠진 것같이 해야 하며 미적거려서는 안 된다”는 구절을 읽었다면 4월16일 세월호 사고 때 해양경찰을 비롯한 공직자들이 왜 그리 ‘미적’거렸는지 따져봐야 하지 않겠어요?


“막히고 가려져서 통하지 못하면 민정이 답답해진다. 달려와 호소하려는 백성을 부모의 집에 들어오게 하듯 해야 어진 목민관이다”라는 구절을 읽었으니, 왜 대통령이 세월호 유가족들의 청와대 방문을 거부해 동사무소 앞에서 노숙하게 하는지 생각해봐야 하는 것 아니에요?


새로운 토론거리가 나오지 않자 사회자는 찬종씨가 발표 중에 제기한 의문-‘공직자의 임기를 정해 지켜야 하는가’-에 대한 토론을 이끌었지요. 찬종씨는 핀란드의 교육정책관이 20년간 한자리에서 교육개혁을 추진한 사례를 소개하며 우리나라에서는 교육감이 바뀔 때마다 교육정책이 바뀌니 문제라고 지적했고, 소정씨도 학생들이 혼란을 겪는다며 동의했습니다. 그러나 성호씨는 제도가 바뀌는 건 그 제도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고, 진의씨는 핀란드의 경우가 독특한 사례라고 말했습니다.


토론이 진행되며 공직자의 임기가 중요한 게 아니고 정책이 중요하다는 데 의견이 모아졌습니다. 대혁씨는 최근 정부가 내놓은 부동산 대책을 언급하며 어떤 정책이 좋은가 나쁜가를 판단하려면 그 정책으로 ‘누가 이익을 보는가?’를 알아야 한다고 말했지요. 새로운 정책이 나올 때마다 ‘누가 이익을 보는가?’ 궁금하고, 특정 그룹이 부당한 이익을 보는 걸 막고 싶지만 그럴 힘이 없어 답답하다고도 했습니다. 토론 과정에서 대혁씨를 비롯한 친구들이 우리 사회의 문제점을 제대로 알지 못한다는 게 분명해졌지요. 신문 읽는 사람은 물론 방송 뉴스를 보는 사람도 하나 없다니 놀라웠습니다. 인터넷 뉴스만으로 세상을 보아 그런지 사건과 사고에 대해 지극히 단편적으로 아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대혁씨, ‘누가 이익을 보는가’ 알고 싶으면 신문을 봐야 합니다. 기사 내용을 무조건 받아들이지 말고 대학생의 지성으로 말이 되는지 의심하며 읽어보세요. 누군가 부당한 이익을 얻는 걸 막고 싶으면 양심에 따라 행동하는 시민들의 모임에 참여하세요. ‘종북’ 운운하며 편가르기 하는 무리 말고 정의로운 사회를 실현하기 위해 ‘함께 꿈꾸는’ 사람들이 모인 참여연대 같은 곳에 가보세요.


대혁씨도 알겠지만 ‘아름다운 서당’은 오늘 출범 10년을 기념합니다. 인문학을 공부해야 취업이 쉽다고 하지만 우리 서당과 아카데미의 목표는 취직이 아니고 ‘정의롭고 행복한 삶’입니다. 정의와 행복은 우리 모두의 꿈, 우리가 목민심서 같은 ‘고전’들을 읽는 이유는 그 책들이 언제나 현실을 비추어 꿈을 이루는 바른길을 보여주는 거울이기 때문입니다. 대혁씨, 큰 거울 앞에서 다시 만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