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신문 칼럼(삶의 창)

햄버거에 대한 명상(2014년 11월 15일)

divicom 2014. 11. 15. 22:03

오늘 아침 한겨레신문 '삶의 창'에 실린 제 칼럼입니다. 집 가까운 곳에 문을 연 햄버거 집을 보고 느낀 점을 쓴 것입니다. 2008년에 잠깐 '삶의 창'에 글을 쓴 적이 있고, 2012년 봄에 다시 쓰기 시작해 2년 반 동안 썼는데 그만 쓰기로 했습니다. 그동안 제 글을 읽어 주신 분들께 감사합니다.


햄버거에 대한 명상


분식집들 앞에는 녹슨 은행잎과 플라타너스잎이 뒹굴지만 햄버거 빌딩 앞엔 축하 꽃들이 화려합니다. 낡은 건물을 허물고 말쑥한 이층 건물을 지어 미국식 이름의 햄버거를 팝니다. 일층엔 햄버거를 사려는 사람들이 줄지어 서 있고 이층엔 햄버거를 먹는 사람들과 기다리는 사람들이 가득합니다. 오랫동안 독점적 위치를 누리던 일본계 패스트푸드점은 끼니때에도 텅 비고, 분식집 주인들은 부러운 눈으로 햄버거집의 성황을 바라봅니다.


햄버거집의 손님 중엔 몸집이 큰 사람이 많습니다. 가족이 함께 온 경우는 거의 예외 없이 부모와 아이들 모두 둥글둥글합니다. 좋아하면 닮는다니 햄버거를 좋아해서 햄버거처럼 둥근 걸까요? 어쩌면 다른 이유가 있을지도 모릅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이 분석한 걸 보면 빈곤계층의 초고도 비만 환자 비율이 소득 최상위군 비율의 3.5배나 된다고 합니다. 부자들은 식단을 조절하고 운동도 하지만 가난한 사람들은 먹고살기에 바빠 그러지 못하니 몸이 커진다는 거지요.


햄버거 빌딩은 진공청소기처럼 손님을 빨아들입니다. 패스트푸드점은 물론이고 분식집과 치킨집, 분식집들 사이에 박힌 작은 카페에 가던 사람들도 햄버거 빌딩으로 발길을 돌립니다. 햄버거 빌딩이라고 햄버거만 파는 게 아니니까요. 빌딩 양편으로 늘어선 분식집들의 넓고 긴 메뉴판엔 김밥부터 피자떡볶이까지 수십 가지 음식 이름이 적혀 있지만 손님은 보이지 않습니다.


우리나라 취업자의 27퍼센트가 자영업자라 너무 많고 자영업자의 빚이 1년에 10조원씩 늘어난다지만 분식집이나 치킨집이 망한 자리엔 또다시 치킨집과 분식집이 문을 엽니다. 그렇지 않아도 잠시 사장님 소리를 듣다가 문 닫는 일이 흔한데, 햄버거 빌딩 같은 게 생기면 문 닫는 속도가 더 빨라지지 않을까, 남의 일에도 입이 씁니다.


햄버거집을 구경하다 보니 하나 먹어 볼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18세기 초 미국으로 이민 간 독일 함부르크 사람들이 만들어 먹던 샌드위치에서 유래했다는 햄버거는 입이 커야 먹기가 편합니다. 입이 작은 사람은 입을 한껏 벌려야 하는데다 먹다 보면 빵과 빵 사이에 있는 재료들이 떨어져 나오는 일이 잦아 여간 불편한 게 아닙니다. 그러니 사먹는 대신 집에 가서 입 크기에 맞게 만들어 먹는 게 낫겠지요.


햄버거 생각을 해서 그런지 책꽂이의 책들 중에서도 시집 <햄버거에 대한 명상>이 눈을 끕니다. ‘가정요리서로 쓸 수 있게 만들어진 시’라는 부제가 붙은 표제시에서 장정일 시인은 “어쩌자고 우리가 <햄버거를 만들어 먹는 족속> 가운데서 빠질 수 있겠는가?” 묻고 햄버거 재료와 만드는 법을 친절하게 알려줍니다. 햄버거는 ‘아빠’라는 제목의 시에도 등장합니다. “…푼돈을 긁어모아 맥도날드를 사먹는 어린 꼬마들이/ 그 작은 입술로 거무스레하게 그을은 빵/ 사이에 끼인 붉은 스테이크를 씹어 들려 할 때는…거짓 웃음이 거품치네/ 저녁마다 우리의 싱크대 위에서/ 시어가는 김치단지를 볼 때. 냉장고 속에서/ 곰팡이가 먹어대는 식은 밥덩이를 볼 때./ 어머니 거짓 웃음이 거품쳐요! 당신이/ 하얀 냅킨에 싸인 맥도날드를/ 쟁반에 얹어 코카콜라와 함께 내/ 코앞에 내어놓을 때, 이것이/ 너의 아침식사라고 명령할 때, 불현듯/ 된장찌개가 먹고 싶다고 항변하고 싶을 때.”


냉장고를 들여다봐야겠습니다. 햄버거는 나중에 먹고 오늘은 시어가는 김치와 식은 밥을 볶아 멸치국물에 끓인 된장찌개를 곁들여 먹고 싶습니다. 쓴 입에 단침이 고입니다. 2년 반 동안 제 글을 읽어 주신 독자들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