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눈물을 의심하라!(2014년 5월 19일)

divicom 2014. 5. 19. 12:59

관훈클럽이 주최한 서울시장후보 토론회를 텔레비전으로 2시간 동안 지켜 본 후 컴퓨터를 켜니 박근혜 대통령이 담화 도중에 보인 '눈물'이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눈물 흘리기는 슬프거나 억울하거나 기쁘거나 감격했을 때 말이 해주지 못하는 것을 대신 표현해주는 '순수한' 현상이지만 이제 우리 사회에서는 '눈물'조차 의심받게 된 것입니다.


박 대통령은 오늘 아침 청와대 춘추관에서 열린 세월호 참사 관련 대국민 담화에서 승객들의 탈출을 돕다 사망한 이들에게서 대한민국의 희망을 본다며 그들이야말로 '우리 시대의 진정한 영웅'이라고 눈물을 흘렸습니다. 담화문을 쓴 사람이 누구인지 모르지만 그 사람은 그 담화문을 통해 박 대통령이 눈물을 흘릴 수 있게, 또 국민이 그 눈물을 보고 감동할 수 있게 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기울였다고 생각합니다. 세월호 생존자와 피해자들을 돕다 숨진 이들을 일일이 거명한 사실이 바로 그런 노력의 증거이겠지요. 


어린 동생에게 구명조끼를 입혀 탈출시키고 실종된 고 권혁규군, 구명조끼를 친구에게 벗어주고 또 다른 친구를 구하기 위해 물속으로 뛰어들어 사망한 고 정차웅군, 세월호의 침몰 사실을 가장 먼저 119에 신고하고도 정작 본인은 돌아오지 못한 고 최덕하군. 그리고 제자들을 위해 최후의 순간까지 최선을 다한 고 남윤철, 최혜정 선생님... 마지막까지 승객들의 탈출을 돕다 생을 마감한 고 박지영, 김기웅, 정현선님과 양대홍 사무장님, 민간 잠수사 고 이광욱 님” 


글을 쓰는 사람들, 특히 정치적 파급 효과를 노려 글을 쓰는 사람들은 가끔 아주 비극적인 상황까지 글의 효과를 위해 이용할 때가 있습니다. 오늘 담화문을 쓴 사람도 예외가 아니었을 겁니다.


박 대통령은 해양경찰을 해체하고, 희생자들의 넋을 기리고 안전의 중요성을 되새기기 위해 추모비를 건립하고, 416일을 국민 안전의 날로 지정할 것을 제안한다며 담화를 마무리했지만, 대통령이 발표한 여러 가지 조치보다 더 인터넷 세상을 달군 것은 그의 '눈물'입니다.


누구나 눈물이 흐르면 닦는 게 자연스러운데 눈물을 닦지 않은 채 담화를 끝냈으니 그건 눈물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었다고 분석한 사람도 있고, 박근혜 대통령이 '눈물'을 정치에 얼마나 잘 이용해왔는지 분석한 사람도 있습니다. 


한겨레신문에 따르면,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2004년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 역풍으로 한나라당이 위기를 맞았을 때 정당 대표 텔레비전 연설에서 마지막으로 한번만 도와달라”며 눈물을 보여 당시 총선에서 한나라당이 기대 이상의 의석을 확보하게 하는 데 기여했다고 합니다.


2010년에는 천안함 침몰 희생자 분향소에서, 지난 2012년에는 대통령선거 유세 기간 중 교통사고로 사망한 수행 보좌관 빈소에서 눈물을 보였으며, 지난 3월에는 파독 광부들을 만난 자리에서, 지난 4월 16일에는 세월호 참사 가족 대책위원회 대표단과 만난 자리에서 위로의 말을 전하며 눈물을 보였다고 합니다. 


눈물의 성분은 눈물에 담긴 진실에 따라 조금씩 다르다고 하니, 대통령이 오른팔로 여기던 보좌관의 빈소에서 흘린 눈물과 오늘 흘린 눈물의 성분이 같을지 다를지는 알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러나 대통령이 최근 들어 자주 눈물을 보이고 있는 것이 좋은 일이 아닌 것은 분명합니다. 눈물을 흘린 이유가 좋은 일보다는 나쁜 일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정치평론가들은 박근혜 대통령이 지방선거를 겨우 2주 앞두고 눈물을 흘림으로써 지방선거에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고 분석합니다. 대통령의 눈물이 인기하락 중인 대통령과 집권 여당에게 정치적 이익을 가져다줄지는 모르지만, 일각에서 주장하듯 의도되고 연출된 눈물이라면 결국 발각되리라 생각합니다. 아니 꼭 발각되길 바랍니다. 그것은 인류 전체가 공유하는 '순수한' 감정의 발로 형식을 의심하게 한 반 인류적 범죄행위이니까요.


오늘 서울시장 후보들의 관훈클럽 토론회에서는 지난 주 후보 수락 연설에서 눈물을 보였던 정몽준 후보가 거의 내내 미소를 보였습니다.


부끄러운 일이지만, 미소든 눈물이든 지금 우리나라 정치인의 몸짓은 그의 주장과 마찬가지로 의심해 보아야 할 대상입니다. 삶에서 감정은 중요하고 눈물은 중요한 감정 표현의 수단이지만 감정만 가지고는 살아갈 수 없습니다. 서울시장, 대통령 등 선거직 지위는 시민의 삶을 책임지는 자리입니다. 그들의 눈물이 내 감정에 호소할 수는 있지만 투표는 감정으로 해선 안 됩니다. 결혼 안 하고 혼자 사는 사람이라 불쌍하니 찍어줘야지 하는 식의 순진한 투표 행태가 이 나라를 지금과 같은 상황으로 끌고 왔습니다. 이번 지방선거에서만큼은 불쌍한 사람에게 동전 한 닢 주는 식의 투표를 하지 말아야 합니다. 


눈물을 의심하는 것은 더 할 수 없이 슬픈 일이지만 의심해야 할 때는 의심해야 합니다. 그래야 세월호 사건과 같은 비극이 되풀이 되는 것을 막을 수 있습니다. 게다가 '악어의 눈물'이라는 말도 있으니까요. 고대 그리스에서 유래했다는 이 말은 먹잇감을 앞에 두고 혹은 먹잇감을 씹으며 그 먹이의 죽음을 슬퍼하며 악어가 흘리는 눈물을 뜻하며, 정치인들의 눈물을 묘사하는 데 가장 많이 쓰인다고 합니다. 6월 4일 지방선거까지 얼마나 많은 정치인들이 눈물을 흘릴지는 모르지만 그 눈물이 '악어의 눈물'은 아니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