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신문 칼럼(삶의 창)

두 가지 선행(2014년 3월 1일)

divicom 2014. 3. 1. 04:57

오늘은 삼일절입니다. 태극기를 내걸며 이 나라가 자유를 위해 흘린 피를 생각하고, 우리를 억압하는 모든 것에 맞서 싸우겠다고 마음을 다져야 할 시간입니다. 아래는 오늘 아침 한겨레신문 '삶의 창'에 실린 제 칼럼입니다. 


두 가지 선행


‘피겨 여왕’ 김연아 선수는 러시아 소치에서 폐막된 겨울올림픽 경기에서 사실상 은퇴했지만 그에 대한 사랑은 앞으로도 한참 지속될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그는 지금 이 나라에 가장 결여된 품격과 통찰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겉모습 꾸미기에 혈안이 된 사람들, 파렴치한 죄를 짓고도 집단적 건망증과 도덕적 해이에 기대어 활개치는 사람들,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는 채 남들 가는 대로 전력질주하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 사이에서 김 선수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정상에 올랐습니다.

성희롱적 발언으로 아나운서들을 모독했다 낙선한 전직 국회의원은 케이블텔레비전에서 활약 중이고, 박사 논문을 표절해 여당을 떠났던 현직 국회의원은 복당한다고 합니다. 초등학생 제자를 성추행했다가 징역 4년을 선고받은 장학사도 있습니다. 어린 소녀를 추행하고 유사강간행위를 하고 촬영까지 했으니 ‘엄중한 처벌’을 내리겠다며 징역 4년을 선고한 법원, 누가 보기에 ‘엄중한’ 걸까요?

1919년 임시정부 헌법으로 ‘민주공화국’임을 천명한 이 나라가 김연아씨를 ‘여왕’으로 부르는 건 스케이팅 점수 때문만은 아닙니다. 그것은 연아씨가 아무도 흉내 낼 수 없는 실력, 철저한 자기관리, 국경을 뛰어넘는 선행으로 스케이팅의 수준과 나라의 위상을 한껏 끌어올려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지 않은 자신만의 ‘왕국’을 세웠기 때문입니다.

2000년대 중반 각종 대회를 석권하며 ‘연아 키즈’의 등장에 기여한 김 선수, 그가 다시 세계인의 박수를 받는 걸 보며 고사리손을 잡고 얼음판을 찾는 어머니들이 많을 겁니다. 그 어머니들이 꼭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연아씨는 스스로 그 일을 선택했다는 것입니다. 피겨스케이팅을 하겠다고 결심한 뒤엔 군것질 한번 허투루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어른들이 다르듯 어린이들도 다릅니다. 여섯살 연아는 처음 타본 스케이트에 매료되어 그 길로 들어섰지만, 은반 위의 여왕을 보고 감탄하면서도 스케이트를 타지 않으려는 아이가 얼마든지 있을 수 있습니다.

국회가 학원들은 그냥 둔 채 학교에서 ‘선행학습’을 금지하는 법을 통과시켰으니 학원으로 달리는 어머니들이 더 많아질 겁니다. 그 어머니들이 원하는 건 자녀가 남보다 ‘먼저 가는 선행(先行)’이지만, 정말 높은 곳에 도달하려면 자신만의 속도로 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선행’을 위해 동분서주하는 어머니들에게 묻고 싶습니다. 대개 ‘선행’의 끝은 ‘선착’(先着)이고 무릇 인간의 종착지는 죽음이니, 자녀가 ‘선행’을 거듭해 죽음에 선착하기를 바라는 거냐고?

우리나라에는 수많은 ‘김연아’가 있습니다. 꼬마 가수 김연아, 학생 김연아, 직장인 김연아, 흰머리가 늘어가는 김연아 할머니도 있습니다. 김연아 선수가 자신보다 운 나쁜 사람들을 생각할 줄 몰랐다면, 그의 것으로 생각했던 금메달이 남에게 가는 것을 보고도 ‘더 간절한 사람에게 줬다고 생각’할 줄 아는 사람이 아니었다면, 지진으로 고통받는 아이티인들, 희귀병 어린이들과 소녀가장들을 위해 ‘선행’(善行)을 하는 사람이 아니었다면, 그는 결코 ‘여왕’이 될 수 없었을 겁니다.

스케이트를 타지 않아도 연아씨처럼 자신을 연마하며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은 누구나 자신만의 왕국을 세울 수 있습니다. 자녀가 연아씨처럼 되기를 바라는 어머니들이 아들딸에게 가르쳐야 할 것은 ‘먼저 가는 선행’이 아니라 ‘선을 행하는 선행’입니다. 오늘은 삼일절, 95년 전 우리 선조들이 일본 식민통치에 맞서 민족해방을 선언했던 3·1운동 기념일입니다. 김 선수의 등 뒤에서 그 어떤 국기보다 아름답던 태극기를 자녀와 함께 내걸며 어떤 ‘선행’을 할까 궁리해보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