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신문 칼럼(삶의 창)

마차를 돌리려면(2013년 12월 28일)

divicom 2013. 12. 28. 09:53

오늘 한겨레신문 '삶의 창'에 실린 제 칼럼입니다. 

한 해 동안 뒤로 덜컹거리며 가는 낡은 기차를 탄 기분이었습니다. 여러분은 어떠셨는지요?


마차를 돌리려면


절망의 이유를 찾는 게 거리에서 돌 찾기보다 쉬운 한 해였습니다. 침 뱉는 사람은 늘고 책 읽는 사람은 줄었습니다. 중국·일본 등 주변국들은 제 나라나 정권의 이익을 좇아 동북아의 안정을 위협하는데, 냉전 논리에 갇힌 사람들은 나라 밖 상황엔 무감한 채 ‘다른 생각’을 ‘종북’으로 몰고, 친일·친독재 역사교과서를 두둔했습니다.


국가기관들의 지난해 대통령선거 개입을 규탄하는 시위가 국내외에서 이어졌고, 경상남도 밀양, 제주도 강정 등 곳곳에서 부당한 공권력에 내몰린 국민의 신음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남양유업 사건으로 ‘을’을 향한 ‘갑’의 고질적인 횡포가 드러났고, 전셋값 바이러스가 수많은 사람들을 공격했습니다.


가장 한심한 건 2035년까지 원자력발전 비중을 29%로 끌어올리겠다는 정부의 에너지 계획이었습니다. 1986년 체르노빌,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와 후유증을 보면서도 이미 있거나 계획중인 원전 34기에 6~8기를 추가 건설하겠다는 계획을 내놓았습니다.


‘푸른 말의 해’가 목전이지만 우리는 늙은 말들이 끄는 마차를 타고 과거로 가고 있는 듯합니다. 1960년대나 1970년대 같기도 하고 해방 전후 같기도 합니다. 정부가 하는 일마다 국민을 화나게 하고 싸우게 하니 김구 선생이 떠오릅니다. 선생은 <백범일지>에서 “집안이 불화하면 망하고 나라 안이 갈려서 싸우면 망한다. 동포 간의 증오와 투쟁은 망조다”라고 경고했습니다.


뽀얀 얼굴을 찡그린 채 젊은이가 묻습니다. “어떻게 해야 이 나라를 구할 수 있을까요?” 주름투성이 얼굴에 미소 띤 스승이 답합니다. “먼저 너를 구해. 너를 구하면 나라도 구할 수 있어. 우선 네가 할 수 있는 걸 해.”


“첫째, 길에 침을 뱉지 마. 비위 상하는 일 많아도 침은 화장실에서 뱉어. 둘째, 지하철과 엘리베이터를 탈 때는 안에 있는 사람이 내린 후에 타. 비운 다음 채우는 게 만고의 진리잖아. 셋째, 헌 옷을 입어. 살기 힘든 사람이 많을 때 혼자 새 옷을 자꾸 해 입는 건 부끄러운 일이야. 넷째, 가끔 홀로 전화기 없이 거닐어봐. 보도블록 사이 이끼를 들여다보거나 푸른 하늘 흰 구름을 올려다보거나 먹고살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사람들을 둘러봐. 그들이 네 스승이야. 다섯째, 음식량을 줄이고 독서량을 늘려. ‘먹방’을 보지 않으면 자연히 몸의 살이 빠지고 황폐한 정신에 물이 오를 거야. 여섯째, 잠자리에 들기 전 단 5분이라도 눈 감고 무릎 꿇고 나는 누구인가, 무얼 해야 하는가 생각해봐.”


젊은이가 다시 묻습니다. “스승님 같은 분도 새해 목표를 세우시나요?” “그럼, 매일 향상이 나의 꿈이니까.”


“첫째, 먹는 걸 줄일 거야. 조금 먹어야 정신이 맑아지니까. 둘째, 책을 읽을 거야. 지식을 위해서가 아니라 다른 의견을 이해하기 위해서. 셋째, 울고 싶은 사람에게 어깨나 가슴을 내줄 거야. 억지웃음보다 울음이 고통을 덜어주거든. 넷째, 정의에 투자할 거야. 정의를 위해 싸우는 시민단체에 가입하거나 이미 가입한 곳에 보내는 후원금을 늘릴 거야. 다섯째, 사랑을 키울 거야. 미운 짓만 골라 해서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이 있으면 그가 그러는 게 유전자 때문인지 무지 때문인지 관찰하며 미워하지 않으려 노력할 거야. 여섯째, 가능하면 하루에 한 번씩 해보지 않은 일을 할 거야. 하던 일만 하면 머리가 굳고 머리가 굳으면 생각도 굳으니까. 처음 보는 사람에게 인사하거나, 눈밭에 누워 얼굴에 떨어지는 눈꽃을 맞아도 좋겠지.”


사흘 지나면 새해입니다. 노인이 말하듯 하면 과거로 가는 마차를 돌릴 수 있을까요? 마부를 바꾸지 않고도 마차의 방향을 바꿀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