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문장

이마트 노조 탄압(2014년 1월 17일)

divicom 2014. 1. 17. 11:24

오늘 아침 자유칼럼(www.freecolumn.co.kr)에서 보내준 글을 읽으니 유통업 강자라는 이마트의 실체가 보여 섬뜩합니다. 창업 때부터 '무노조'를 추구해온 삼성그룹, 시대에 역행하는 이 거대 공룡의 최후는 어떤 것일까요? 지켜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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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야당 의원의 출판기념회

2014.01.17


정치인의 출판기념회가 합법으로 포장된 정치자금 모금행사라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입니다. 자신이 쓴 책도 아니라 남이 써준 책인 경우가 많고, 내용도 과장된 자화자찬으로 채워진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것이 필자가 정치인의 출판기념회에 잘 가지 않는 이유이고, 마지못해 가는 경우도 끝까지 자리를 지킬 만큼 인내심을 발휘하지 못한 때가 많았습니다. 

작년 말 국회의사당 의원회관에서 열린 민주당 노웅래 의원의 출판기념회에 갈 때도 그런 생각이었습니다. 김한길 당대표의 비서실장을 겸하고 있는 의원이라 수많은 여야 의원들이 행사장 앞의 내빈석을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사회자는 의원들을 일일이 호명해 일어서게 한 뒤 박수를 유도했습니다. 그 중의 몇 의원은 단상에 올라 노 의원을 향해 덕담을 했습니다. 

그 뒤 의원들은 하나둘 자리에서 일어나 나갔습니다. 그들이 나가고 새로 몇 명의 의원이 들어오면 사회자는 그들을 다시 소개했습니다. 일종의 여의도 판 품앗이였습니다. 내빈석은 행사 내내 오가는 사람들로 어수선했습니다. 하지만 행사가 끝날 무렵 내빈석은 텅 비었습니다. 

그것은 정치인들의 출판기념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었습니다. 그것이 전부였다면 나도 의원들보다 일찍 자리를 떴을 것입니다. 제가 끝까지 지켜보자고 맘을 먹은 것은 출간을 기념하는 책의 제목 때문이었습니다. 

‘희망 더하기 12,000人-이마트 정규직화 168일 대장정’. 그 책은 흔한 자화자찬 식 책과는 달리, 비정규직이라는 심각한 사회문제에 대한 구체적인 의정활동 실적을 담고 있었습니다. 대형 유통업체인 이마트의 비정규직 직원 12,000명을 정규직으로 바꾸게 한 투쟁의 기록이자, 무노조 경영을 목표로 하고 있는 이마트가 노조 파괴를 위해 동원한 불법적이고 비인도적인 수법들에 대한 고발장이었습니다.

노 의원이 이마트의 내부고발자로부터 회사의 불법적인 노조탄압에 관한 1만3,000개의 파일이 담긴 USB를 건네받아 법리적 분석 검토와 노동청 고발 및 여론화 과정을 진두지휘한 기록이었습니다. 노 의원은 언론인 출신답게 제보 내용 확인이나, 폭로시점 조율, 언론매체의 협조, 검찰수사를 이끌어내는 과정에서 기자적인 감각을 유감없이 발휘했습니다. 

이 책을 통해 알려진 이마트의 노조대책은 섬뜩하면서도 어이가 없는 내용들이었습니다. 이마트는 사원들을 KJ OL KS MJ 등으로 분류해 관리했는데, KJ는 가족사원, OL은 오피니언 리더 사원, KS는 관심사원, MJ는 문제사원의 영어식 표기였습니다. 

노조에 가담할 위험이 있는 요주의 사원인 KS, MJ사원은 다시 노조활동이나 관심정도에 따라 ABCD로 재분류해서 관리했으며, 이들에 대한 감시는 회사의 친위대격인 KJ사원에게 맡기고 있었습니다. 회사는 양대 노총 홈페이지에 들어가 사원의 이메일 주소나 주민번호를 이용, 가입여부를 알아내 채용여부를 결정했습니다.

MJ사원으로 찍히면 일거수일투족이 밀착감시의 대상이 됐고, 견디기 어려울 정도의 고된 자리로 배치하거나 민원이 많은 자리로 보내 무능력 사원으로 낙인을 찍어 퇴출시켰습니다. MJ사원에 대한 음해성 루머를 퍼뜨리는 사내 여론조작팀도 있었습니다.

이런 회사이다 보니 노동 관련 책자는 불온서적으로 간주됐습니다. 부천점과 구미점에서 각각 ‘전태일 평전’과 ‘민주노총 수첩’이 발견되자 혐의자 색출을 위해 회사가 발칵 뒤집힌 사건도 있었습니다. 이 사건에 혐의가 있는 협력사는 퇴점됐고, 혐의자는 이동 배치 됐습니다.

이마트의 1만2,000명의 비정규직원들이 정규직화했지만 비정규직 문제는 여전히 우리 사회의 큰 숙제입니다. 숫적으로 전체 근로자의 절반 가까이를 차지하면서도, 임금 면에선 정규직의 절반밖에 못 받는 비정규직은 불평등과 양극화의 상징입니다. 이마트 사건에서도 부당 노동행위에 대한 책임은 퇴직 대표이사에게 물었을 뿐 현 경영진에게는 미치지 못했고, 내부고발자는 회사가 제기한 2,000억원의 손해배상 소송에 시달리고 있다고 했습니다. 

해고된 이마트 노조위원장은 이날 축사에서 이마트 노조가 유통업계 노조의 희망이 돼야 한다고 했고, 노 의원도 모든 비정규직들이 행복해질 때까지 투쟁하겠다고 답했습니다. 국회의원의 출판기념회가 이처럼 민생친화적이라면 누가 정치를 나무라겠습니까? 

김한길 대표는 이날 덕담을 하면서 노 의원을 ‘을을 위한 정치의 원조’라고 말했습니다. 그렇게 일 잘하는 의원을 비서실장으로 둔 당 대표가 이끄는 민주당이 10% 대의 지지밖에 받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모르겠습니다. 노의원이 이마트와 투쟁할 때 김대표는 천막투쟁을 했기 때문은 아닐는지요? 

지난 15일 김대표는 노 의원을 당 사무총장으로 임명했습니다. 새해엔 민주당도 뭔가 일을 잘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필자소개

임종건

74년 한국일보기자로 시작해 한국일보-서울경제를 3왕복하며 기자, 서울경제논설실장, 사장을 지내고 부회장 역임. 주된 관심 분야는 남북관계, 투명 정치, 투명 경영. 현 한남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