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tbs '즐거운 산책(FM95.1Mhz)'에서는 '털신'에 대해 생각해보고 가곡 '선구자'를 들었습니다. 얼마 전 눈 오는 날 오래된 털신을 신고 나갔는데 털신의 바닥이 떨어져 찬바람과 눈 녹은 물이 신발 안으로 스며들었습니다. 발가락이 어는 게 느껴졌지만 그런들 어떤가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며칠 후 발가락이 빨갛게 붓고 단단해지며 아프고 간질간질했습니다. 털신 때문에 언 거라고는 생각도 못하고 발가락이 왜 이럴까 의아해하기만 했습니다. 그러다 문득 이 통증과 간질거림이 낯익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린 시절 저는 누구보다 동상에 잘 걸렸는데 동상에 걸리면 바로 이런 느낌이 들었습니다. 어디선가 동상 치료는 화상 치료하듯 해야 한다는 얘길 들은 게 떠올라 밤에 잠자리에 들기 전 바셀린을 바르고 양말을 신고 잤습니다. 한 삼일 그렇게 하니 많이 호전되었는데 이젠 다른 생각이 마음을 괴롭힙니다. 저는 이렇게 금방 나았지만 한 데서 일하는 분들의 동상은 이렇게 쉽게 낫지 않을 테니까요.
보통 성악가들은 '선구자'를 2절까지 부르는데 테너 박세원 씨는 3절까지 모두 불렀기에 오늘 아침엔 그 노래를 틀어드렸습니다. 한반도를 둘러싼 상황이 '선구자'가 만들어졌던 20세기 초와 닮았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언제 들어도 가슴을 뜨겁게 하는 노래, 꼭 한 번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아래에 제 칼럼 '들여다보기'에서 읽어드린 '털신' 원고와 '선구자'의 노랫말을 옮겨 둡니다.
털신
오래된 털신의 바닥이 떨어져
찬바람이 숭숭 들어옵니다.
그러고 보니 이 신발을 신고
참 여러 곳을 떠돌았습니다.
영하의 거리도 털신을 신으면 걸을 만 했고
얼어붙어 미끄러운 골목도 무섭지 않았습니다.
털신 덕에 겁 없이 겨울 복판을 쏘다니면서도
털신에게 고맙다는 생각은 해 본 적이 없습니다.
헤진 털신을 보니 부모님이 생각납니다.
내 몸의 가장 낮은 곳을 감싸주는 털신처럼
내가 가장 힘들 때 나를 감싸주는 분들...
살기에 바쁘다고, 아들딸 챙긴다고 종종걸음 치는 자식들을 보며
부모님은 겨울나무처럼 외로우셨겠지요.
헤진 털신으로 스며드는 찬바람 같은 것이
두 분의 마른 가슴으로도 숭숭 드나들었겠지요.
새해, 성공하는 것도 좋고 돈 버는 것도 좋지만
저는 그저 부모님께 털신 노릇이나 했으면 좋겠습니다.
마음이 춥지 않게, 발이 시리지 않게
제게 해주신 것의 반의반이나 했으면 좋겠습니다.
선구자
일송정 푸른 솔은 늙어 늙어 갔어도
한줄기 해란강은 천년 두고 흐른다
지난날 강가에서 말 달리던 선구자
지금은 어느 곳에 거친 꿈이 깊었나
용두레 우물가에 밤새 소리 들릴때
뜻깊은 용문교에 달빛 고이 비친다
이역하늘 바라보며 활을 쏘던 선구자
지금은 어느 곳에 거친 꿈이 깊었나
용주사 저녁종이 비암산에 울릴때
사나이 굳은 마음 길이 새겨 두었네
조국을 찾겠노라 맹세하던 선구자
지금은 어느 곳에 거친 꿈이 깊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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