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 11월 서울 청계천 평화시장 근로자 전태일 씨가 '근로기준법 준수'를 외치며 스스로 산화한 지 43년이 흘렀습니다. 한국은 세계 15위 안팎의 경제력을 가진 나라로 성장했고, '편리'는 삶을 재는 척도가 되었지만 사람들은 별로 행복하지 않습니다.
오랜만에, 아주 오랜만에 우리 모두의 스승인 전태일, 그 이름 석자를 불러 봅니다. 그의 이름을 부르니
평생 그의 유지를 받들어 실행하시다 2011년 별세하신 그의 어머니 이소선 선생님도 떠오릅니다.
아래는 오늘 아침 한겨레신문에 실린 기사입니다.
“나를 아는 모든 나여, 나를 모르는 모든 나여
지금 이 순간의 나를 영원히 잊지 말아주게”
동생 태삼씨 연세대 박물관 기증
재단사 노동현실 담은 공책 7권
유서·유품도…“사료가치 높아”
“내 사랑하는 친우(친한 벗)여 받아 읽어주게. 나를 아는 모든 나여, 나를 모르는 모든 나여. 부탁이 있네. 나를, 지금 이 순간의 나를 영원히 잊지 말아주게.”
1970년 서울 청계천 평화시장에서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고 외치며 불길 속에서 산화한 전태일 열사의 유서는 이렇게 시작한다. 그는 이 유서에서 세상의 모든 사람들을 가리켜 ‘나를 아는 모든 나’, ‘나를 모르는 모든 나’라고 썼다. 결국 이 유서의 수신인은 우리 모두, 곧 또다른 전태일들이었던 셈이다. ‘지금 이 순간의’ 그를 기억하는 우리들 앞에, 전태일 열사의 미공개 일기와 유서 등 유품이 43년 만에 공개된다.
전태일 열사의 동생 전태삼(63)씨는 2일 서울 도봉구 쌍문동 집에 보관중인 이들 유품을 이르면 이번주부터 연세대 박물관에 보존처리를 의뢰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유품 가운데는 전태일 열사가 18살 때부터 서울 평화시장 재단사로 일하면서 겪은 열악한 노동 현실과 고민을 기록한 공책 7권 분량의 일기가 있다. 이 일기의 일부는 조영래 변호사가 쓴 <전태일 평전>의 기초자료로 사용되기도 했다.
전태일 열사가 분신을 결심하고 친구들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으로 쓴 유서와 평화시장 재단사 모임인
‘바보회’의 회칙 및 회의록, 당시 동료들로부터 노동환경을 직접 조사한 설문지 등 엄혹했던 시절을 생생히 증언하는 자료도 있다. 이원규 연세대 박물관 학예사는 “한국 노동운동의 맹아를 보여주는 사료적 가치가 높은 자료들로, 자발적인 동력을 토대로 한 소박한 운동을 확인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들 유품은 그동안 정리되지 않은 채로 전태삼씨가 서류가방에 넣어 보관해 온 터라 일부는 색이 바래고 곰팡이가 스는 등 보존 상태가 좋지 않다. 글씨를 알아보기 어려운 부분도 있다.
전태삼씨는 “보존처리가 끝나면 연세대나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국가기록원 등 전문기관과 보관을 논의하는 한편 일반 시민들도 자유롭게 접근해 볼 수 있도록 전시하는 방안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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