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신문 칼럼(삶의 창)

불행한 통계 (2013년 10월 5일)

divicom 2013. 10. 5. 11:12

하늘 푸르고 가을바람 솔솔 불지만 이것을 즐겨야 할 청소년들은 공부의 노예가 된 채 실내에 갇혀 있습니다. 아래에 오늘 아침 한겨레신문 '삶의 창'에 실린 제 칼럼을 옮겨 둡니다.



불행한 통계  


작년 한국의 자살률은 10만명당 29.1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12.5명)의 2.3배입니다. 자살률은 나이가 많을수록 높아 여든 넘은 분들의 자살률은 이십대의 5배에 이릅니다. 노인층의 높은 자살률만큼 가슴 아픈 건 빠르게 증가하는 청소년 자살입니다. 우리나라 십대 인구 10만명당 자살자 수는 2001년 3.19명에서 2011년 5.58명으로 57.2퍼센트나 증가했습니다.


저의 십대를 돌아봅니다. 집에서나 학교에서나 마음 나눌 사람이 없었습니다. 어른들이 거의 모두 불행해 보이니 어른이 되어도 외롭고 괴로울 것 같았습니다. 어느 날부턴가 가슴 아래께가 아팠습니다. 여러 가지 검사를 한 후 의사가 말했습니다. “햇볕을 많이 쬐고 말을 많이 해요.” 햇볕을 쏘이려면 밖으로 나가야 하고 말을 많이 하려면 사람들을 만나야 하니, 골방에 틀어박혀 절망에 빠지는 일을 막을 수 있겠지요. 훗날에야 그때 그 처방이 가장 경제적이고 효과적인 자살 예방법임을 알았습니다.

우리나라 청소년들의 자살률이 높은 건 공부하느라 바빠서 햇볕을 쪼이거나 친구들과 떠들 시간이 없기 때문일 겁니다. 아침부터 밤까지 ‘이 세상에 친구는 없다, 경쟁자가 있을 뿐’이라는 말을 들으며, 나쁜 성적이 초래한다는 암울한 미래에 대한 불안에 영혼을 잠식당하다 보면 그날이 오기 전에 죽는 게 나을 거라고 생각하게 되겠지요.

자살은 대개 불행 속에서 하는 수 없이 취하게 되는 ‘선택 아닌 선택’으로 불행을 벗어나지 못하는 자신에게 가하는 폭력입니다. 행복해서 자살하는 사람이 없듯 행복한 사람이 폭력적인 경우도 없습니다. 최근 3년간 우리나라 초중고교에서는 폭력 가해 학생이 두 배나 증가했는데, 초등학교에서는 네 배 가까이 늘었다고 합니다. 가해 학생의 수가 늘었다면 피해 학생의 수도 늘었겠지요.

어린 학생들의 일과를 보면 그들이 폭력적이 되는 걸 이해할 수 있습니다. 어른들이 짜놓은 시간표에 맞춰 ‘사육’되다 보면 분노가 쌓이는 게 당연할 테니까요. 비싼 학원에서 선행학습을 한 아이일수록 성적이 좋지만 그 아이는 학원에서 배운 것을 학교에서 되풀이하니 지겨울 겁니다. 그런 학원에 다니지 못하는 아이는 성적이 나쁘고 성적이 나쁘면 바보 취급을 당하니 그 또한 학교 가기가 싫을 겁니다.

한때 세계에서 가장 열심히 어린이들에게 주입식 교육을 했던 독일은 역사에 대한 반성 끝에 ‘한두 명의 뛰어난 사고보다 모두의 깊이있는 사고!’를 기치로 초등학교에서 선행학습을 퇴출시켰다고 합니다.

2011년 오이시디 회원국 ‘어린이·청소년 행복지수 국제비교’에서 우리나라는 3년 연속 꼴찌를 기록했고, 우리 초등학생들의 가장 큰 스트레스 요인은 ‘학원’이었습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참교육연구소가 초등학생 1450명을 대상으로 조사했을 때도 ‘학원 다니기’가 가장 괴롭다는 응답이 나왔습니다.

학원에서 쏟아져 나오는 학생들을 보며 제 학창시절을 생각합니다. 당시엔 학원이란 게 없고 돈 있는 아이들만 과외공부를 했는데 저는 과외를 할 수 없어 자유로웠습니다. 읽고 싶은 책을 마음껏 읽고 가을날 낙엽 위에 멍하니 앉아 있다 수업에 늦기도 했습니다. 요즘 아이들처럼 살아야 했다면 일찍 이곳을 떠났을지도 모릅니다.

잘못된 교육을 바로잡는 제일 쉬운 방법은 아이들의 공부 시간을 줄이는 겁니다. 학교 수업을 줄이고 스마트폰을 금지시켜 햇볕 쪼이며 친구들과 놀게 하고, 학원 수업은 저녁 식사 시간 전에 끝내게 해야 합니다. 자녀를 학원에 보내지 않는 부모가 늘면 궁핍으로 인해 자살하는 노인의 수도 줄어들 겁니다. 이 불행한 통계의 시대를 끝내려면 지금 바로 바꿔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