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 참사 3

아버지께 드리는 편지 (2009년 1월 28일)

꼭 일 년 만입니다. 두루마기 차림으로 차례 상에 제주를 올리시는 걸 보니 건너편에 앉아계실 할아버지, 할머니, 누대 조상님들의 음성이 들리는 듯합니다. 80여 년 낡은 무릎을 힘겹게 굽히고 앉아 가만가만 지난 일 년의 희로애락을 보고하는 모습은 영락없이 부모님 앞에 성적표를 내놓은 초등학생입니다. 언젠가 아버지의 노트에서 이런 구절을 보았습니다. “나는 지금까지 내 신앙의 대상을 조상과 선산의 묘소에 두고 살아왔다. 내 조상이 위대하고 전지전능하지는 못할망정 당신들의 자손인 나를 사랑할 것이고 나 자신 그 분들로 인해 태어났기 때문이다.” 엊그제 시립 은평노인종합복지관에서 230여 명의 홀몸 노인들이 합동 차례를 올렸다는 기사를 보았습니다. 아버지와 같은 마음으로 차례 상 앞에 섰을 그 분들을 생각하니..

한국일보 칼럼 2009.10.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