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 조운찬 6

3월, 혹은 March (2021년 3월 3일)

어제 마트에 가니 정육코너 앞에 사람이 유독 많았습니다. 오늘이 3월 3일 '삽겹살데이'라 삼겹살을 세일한다고 했습니다. 두 개에 천오백 원하는 '제주 무' 세일 코너에선 젊은 직원이 커다란 투명 비닐에 담긴 무를 매대에 쏟아붓고 있었습니다. 이만치 떨어져서 그이가 일을 마치길 기다리는데 여인 하나가 저를 밀치고 매대로 가더니 쏟아지는 무 중에서 큰 것을 고르느라 바빴습니다. 저렇게 하면 직원이 일하는 데도 방해가 되고 자기도 위험할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입이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이름 붙은 날과 행사가 많아지며 하루 지난 과거부터 여러 해 지난 과거까지 기억돼야 할 날들과 기억돼야 할 사람들은 빠르게 잊히고, 무엇이 중요한가를 고민하는 일도 줄어드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기억과 고민 없이는 나아감..

동행 2021.03.03

백기완 선생님의 심산상 수상 (2020년 11월 5일)

백기완 선생님, 심산상 수상을 축하드립니다. 부디 쾌차하소서! [여적]백기완의 심산상 수상 조운찬 논설위원 심산 김창숙은 안중근·한용운과 함께 1879년생 동갑내기다. 건국훈장 1등급인 대한민국장을 나란히 받은 점도 같다. 안중근과 한용운이 각각 의병과 승려로 독립운동에 뛰어들었다면 심산은 유학자로 구국운동을 펼쳤다. 심산은 ‘실천하는 선비’였다. 을사늑약 때에는 오적을 처단하라는 상소를 올렸고, 3·1운동 때는 ‘파리장서’ 사건을 주도했다. 1920~1930년대에는 의열단의 무장투쟁을 지원했다. 투옥과 고문으로 점철된 독립운동 끝에 남은 것은 불편한 두 다리뿐. 심산은 스스로를 ‘벽옹’(앉은뱅이 늙은이)이라 불렀다. 심산의 실천적 삶은 해방 뒤에도 이어졌다. 그는 이승만 정권에 맞서 반독재·통일 운동을..

동행 2020.11.05

천박한 도시(2020년 7월 27일)

누구의 말이냐에 상관없이 옳은 말은 옳은 말, 틀린 말은 틀린 말입니다. 저는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모르지만 그가 서울을 '천박한 도시'로 표현한 것이 왜 문제인지 모르겠습니다. 서울은 '천박한 욕망으로 가득한 천박한 도시' 가 맞습니다. 천박한 사람들은 좋아하고 천박하지 않은 사람들은 비감을 느끼는 도시... [여적]‘천박한 도시’ 조운찬 논설위원 1990년대 초 한국을 처음 방문한 프랑스 지리학자 발레리 줄레조는 서울 한강에 늘어선 아파트를 보고 충격을 받았다. ‘서울에 왜 이리 아파트가 많으냐’고 물었을 때 한국인들은 한결같이 말했다. “땅은 좁고 사람은 많기 때문이죠.” 그는 다시 놀랐다. 땅이 좁고 인구밀도가 높은 네덜란드나 벨기에에는 한국과 같은 아파트가 지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줄레조..

동행 2020.07.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