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행

노년일기 295: 가족이 싫어질 때 (2026년 9월 22일)

divicom 2026. 9. 22. 20:15

고아에게 가족은 알 수 없는 그리움의 대상이지만 고아가 아닌

사람 중엔 가족으로 인해 고통받는 사람이 많습니다. 어떤 사람은

가족이 자꾸 싫어진다고 하고, 어떤 사람은 가족이란 결코 버릴

수 없는 평생의 짐과 같다고 합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추석과

같은 명절은 괴로운 날입니다.

 

오랜만에 만난 자리에서 만나지 못하는 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긍정적 호기심을 갖고 애정으로 묻는다면, 추석 같은 명절이

피하고 싶은 날이 되지 않을 겁니다. 그러나 긍정적 호기심을

가진 사람은 갈수록 줄고, 나이나 돈을 내세워 답하기 힘든

질문을 던지며 도움 대신 아픔을 주는 사람이 많습니다.

 

무례한 질문과 충고를 하는 사람 중엔 나이 든 사람이 많습니다.

빠른 사람은 50대부터 이런 노인 노릇--본인은 '어른' 노릇이라

하겠지만--을 하는데, 법정 노인이 되는 65세 이후 사람들이

하는 '어른 노릇'은 노인인 제가 보아도 끔찍합니다. 상처 주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마구 던진 다음 거들먹거리며 '격려금'을

줄 때, 그걸 '격려'로 느끼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요? 돈이 없어서

받기는 하면서도 속으로는 '그래 너 잘났다!' 하지 않을까요? 

 

가족이 괴로움을 주는 가장 큰 요인은 서로에 대해 잘 모르면서

다 안다는 듯 질문이나 충고를 하는 것입니다. 가족이라 해도

가치관과 직업관이 다를 수 있습니다. 부모는 돈이 되지 못하는

노동은 다 헛것이라고 생각해도 아들은 돈보다 보람이 중요하다고

생각할 수 있고, 형은 변호사가 최고의 직업이라고 생각해도

동생은 화가의 꿈을 좇을 수 있습니다.

 

집 밖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생각이나 목표가 나와 다르다고

시비 걸지 않는 것처럼, 나와 다른 생각을 하고 다른 꿈을 꾸는

가족에게도 예의는 필수입니다.

 

'피가 물보다 진하다'는 오래된 말에서 '피'가 예의를 지우는 강력한

지우개로 쓰이지 않을 때, 피를 나눈 가족은 오랜만의 해후를

즐길 수 있을 겁니다. 올 추석엔 용기를 북돋아 주는 가족은 늘고

상처 받는 가족은 줄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