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행

책 사재기 (2026년 9월 19일)

divicom 2026. 9. 19. 11:36

법정 노인이 되어 읽고 있는 고전들은 대개 오래 전에 산

책들입니다. 대학 시절에 사서 읽기를 시도하다 실패한

책도 있고, 기자 시절 그리고 중년에 읽고 싶어 샀으나

읽을 시간이 없어 미뤄 두었던 책도 있습니다.

 

책을 읽다 보면 그때 사 두길 참 잘했다고 저 자신을 칭찬하게

됩니다. 수입 적은 노인이 책--요즘 책 대부분은 제게 너무

비쌉니다--을 사는 건 쉬운 일이 아닌데, 그때 사 둔 덕에

읽고 싶을 때 언제나 읽을 수 있으니까요. 

 

공식적으로 인정받는 '고전'도 있고, 별로 알려지지 않았으나

제겐 아주 좋은 스승 같고 친구 같은 책도 있는데, 이들의

공통점은 자꾸 보게 된다는 겁니다.

 

한 번만 읽을 책이면 살 필요가 없다는 말도 있지만, 어떤

책은 살 필요가 있고 어떤 책은 살 필요가 없는지를 판단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아직 그런 판단력을 갖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 땐 고전을 사는 게 가장 안전하겠지요.

 

유명한 사람을 만났다가 허명이었음을 알게 될 때가 있듯,

베스트셀러를 집어들었다가 고개를 젓는 일이 흔합니다.

어떤 책을 보면 그 책을 쓴 작가의 안면 피부 두께를 재 보고

싶고, 그런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면 대중의 판단을 믿으면

안 되겠구나, 혹은 이런 책을 좋아하는 시대라 내 책이 안

팔리는구나 생각합니다. 

 

젊은 베스트셀러 작가가--40대 말이니 제 눈엔 청년입니다--

엄청나게 큰 돈을 번 후에 남을 시켜 자신의 책을 사재기하게

시켰다고 합니다. 그가 쓴 베스트셀러를 보고 젊은 독자들에게 

실망한 적은 있지만, 그 젊은이가 사재기처럼 적극적 사기

행위를 벌일 줄은 몰랐습니다.

 

그가 자신이 저지른 짓이 하면 안 되는 나쁜 짓이라는 걸

뒤늦게나마 깨닫고 후회하고 있는지, 아니면 '살다 보면

그럴 수도 있지'라고 생각하는지 궁금합니다. 전자의

경우라면 도스토예프스키나 톨스토이를 읽으며 자신을

돌아보길 바랍니다. 후자에 속한다면, 마음대로 살다가

그 삶에 어울리는 죽음을 죽게 되겠지요.

 

얼마 전에  이 블로그에 소개했던 동아일보 이진영 논설위원이

'횡설수설' 칼럼에서 바로 이 문제를 다루었기에 아래에

옮겨둡니다. 맨 아래 링크를 클릭하면 원문으로 연결됩니다.

 

 

책 사재기

 

최근 10년간 ‘국내에서 가장 많이 팔린 책’ 1위와 2위는 한강의 소설 ‘채식주의자’와

‘소년이 온다’이다. 3위는 익명의 한국인 작가가 쓴 자기계발서 ‘세이노의 가르침’,

4위가 이기주 작가(49)의 산문집 ‘언어의 온도’다(교보문고 집계). 이 책은 2017년

‘가장 많이 팔린 책’ 1위에 올랐고 현재까지 170만 부가 나갔다. 후속 히트작이 없던

밀리언셀러 작가가 최근 베스트셀러 순위 조작을 노린 사재기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다.

▷사재기 의혹을 받는 책은 2024년 출간된 산문집 ‘보편의 단어’다. 검찰에 따르면

이 작가는 그해 3∼7월 예전에 자신의 책을 출간했던 출판사 대표에게 돈을 주고 전국

교보문고 매장을 돌며 이 책을 사들이게 했다. 이렇게 사재기한 책은 모두 1631권으로

범행 기간 전체 판매량(1만1135권)의 14%다. 사재기 이후 교보문고 분야별 판매

순위는 3∼4위권에서 2∼3위권으로 올랐다고 한다.

▷유명 작가 작품의 사재기 의혹은 2013년 한 출판사가 황석영 작가 몰래 소설

‘여울물 소리’ 사재기 파문을 일으킨 지 13년 만이다. 하지만 드러나지 않았을 뿐

사재기는 관행처럼 이어져 왔다는 것이 출판계 지적이다. 하루에 발간되는 신간은

약 180권. 대다수 독자들은 남들이 많이 산 책을 고르고, 작가와 출판사로선 베스트셀러

순위에 올라야 독자 눈에 띌 기회를 얻는다. 출판 시장이 작아 하루 판매량이 300권만

돼도 대형 서점 베스트셀러 순위에 들 수 있으니 가성비 좋은 홍보 수단인 셈이다.

▷사재기 수법은 단순하다. 직원이나 알바생을 고용해 대형 서점을 돌며 책을 사는

‘방문 사재기’가 고전적 방법. 온라인에선 가상 계정을 동원해 여러 아이디로 쪼개기

구매를 한다. 사재기를 막기 위해 한 명이 여러 권을 사도 판매 집계에선 한 권만

계산된다. 저자 사인회나 북콘서트에선 참가자들이 책을 사면 책값을 보전해주는

수법이 쓰인다. 사재기한 책들은 서점의 도장을 지우거나, 지우기 어려우면 도장이

찍힌 밑면을 2∼3mm 잘라낸 뒤 재유통시킨다. 같은 책인데 키가 작으면 사재기했던

책이라 의심해봐야 한다.

▷지난해 성인이 1년간 읽은 종이책은 평균 1.3권으로 20년 전(9.1권)보다 크게 줄었다.

책 사는 데 쓴 돈이 가구당 월평균 1만826원밖에 안 된다. 단행본은 3000∼6000부

팔리면 손익분기점을 넘는다. 소설가는 5000부 나가면 ‘한국 문학의 기대주’, 1만 부면

‘한국 소설의 미래’, 3만 부쯤 되면 ‘대세 작가’ 대접을 받는다고 한다. “좋은 책은 독자가

만들고, 베스트셀러는 출판사가 만든다”는 말이 있다. 독자가 없다 보니 좋은 책은 드물고,

고작 1600부에 순위가 달라지는 베스트셀러만 양산되는 것이다.

https://www.donga.com/news/Opinion/article/all/20260914/13466809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