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행

오디세이 (2026년 9월 12일)

divicom 2026. 9. 12. 07:58

제게 노년은 고전을 읽는 시간입니다. 젊은 시절 일에 쫓겨서 

읽지 못했던 책도 있고, 읽으려고 시도했으나 읽히지 않아

읽기를 중단했던 책도 있습니다. 요즘은 잘 읽히지 않아 밀어두었던

호머의 <오디세이>를 읽고 있습니다.

 

전에 몇 번이나 읽으려고 시도했으나 읽지 못했던 책인데, 이젠

아주 재미있게, 가끔 눈시울을 적시며 읽고 있습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처럼 사람과 책 사이에도 시절인연이 있나 봅니다. 그리스어로

읽으면 정말 좋겠지만 그리스어를 모르니 영어 번역본을 읽고 있습니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영화 '오디세이'가 한국에서 이미 천만 명

이상의 관객을 기록했다고 합니다만 노구를 이끌고 극장에 가

세 시간 가까이 앉아 있을 자신은 없습니다. 언젠가 집에서 볼 수

있게 될 날을 기다립니다.

 

사람들은 왜 3천 년 전 이야기에 열광하는 걸까요? 자유칼럼의

권오숙 교수가 바로 그 얘기를 쓰셨기에 아래에 옮겨둡니다.

지난 4일 자유칼럼 20주년 기념행사에 갔지만 권 교수를 뵙지

못하고 와서 서운했습니다. 권 교수님, 감사합니다!

 

우리는 왜 3천 년 전 이야기에 열광하는가

얼마 전 서울의 한 고등학교로부터 강연 요청을 받았습니다. 주제는 ‘우리는 왜

고전을 읽어야 하는가’였습니다. MZ 세대 고등학생들에게 고전의 필요성을

설득하는 일은 생각만 해도 아득하고 난감한 과제였습니다. 하루하루 입시라는

현실적 중압감 속에 살아가는 청소년들에게, 아니 비단 그들뿐만 아니라 오늘을

사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고전이란 그저 ‘지루하고 딱딱하며 현재의 삶과는

동떨어진 옛날이야기’로 여겨질 터였기 때문입니다.

깊어지는 고민 속에서 오랜 시간 강연안을 잡지 못해 애를 태우던 차에, 뜻밖의

구세주를 만났습니다. 바로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영화 <오디세이>였습니다.

이 영화는 8월 5일 국내 개봉 이후 줄곧 예매율 1위를 지키며 천만 관객을

돌파했습니다. 

3천 년 전 고대 그리스의 시인 호메로스(​기원전 8세기경 출생)가 남긴 서사시

<오디세이아>는 그야말로 고전 중의 고전이죠. 그런데 그 까마득한 옛 서사가

최첨단 현대 영상 매체로 재탄생하여 대중의 열광적인 환호를 끌어내고 있다는

사실은, 고전이 지닌 불멸의 생명력을 입증하는 강력한 사례 아니겠습니까? 

강연에서 나는 영화 <오디세이>의 주요 장면을 설명하며 오디세우스 일행이

고향으로 돌아가는 여정에서 겪는 수많은 역경이 왜 우리 인생의 비유인지,

어느 장면이 인간의 어떤 성정들을 보여주는지 세심히 설명했습니다. 

예를 들어 외눈박이 거인(키클롭스) 폴리페무스 에피소드는 리더의 호기심이

어떻게 부하들을 위기에 빠뜨리는지를 보여주고, 지혜를 발휘하여 괴물에게서

탈출한 직후 오만함과 자만심을 주체하지 못해 포세이돈의 참혹한 분노를 사는

오디세우스의 모습은 인간이 지닌 지혜와 오만의 위태로운 상존을 보여줍니다.

치명적인 마법으로 선원들을 돼지로 변하게 만든 마녀 키르케의 유혹이나,

금기시된 태양신의 소떼를 기어코 잡아먹고 파멸하는 부하들의 모습은 쾌락과

본능 앞에 취약한 인간의 본성을 여실히 보여줍니다.

나아가 이 서사가 오늘날 우리 일상 깊숙이 뿌리내려 있음도 짚었습니다.

오디세우스가 전쟁터로 떠나며 아들 텔레마코스의 교육을 맡겼던 지혜로운 친구

'멘토르'의 이름이 오늘날 정신적 스승과 지도자를 뜻하는 '멘토(Mentor)'의 어원이

되었고, 매혹적인 노래로 선원들을 홀려 배를 난파시키는 '세이렌'의 유혹은,

세계적인 커피 브랜드 '스타벅스'의 로고 속 인어로 재탄생하여 일상적 소비문화

속에 살아 숨 쉬고 있다는 사실들을 말입니다.

나는 학생들에게 이렇게 전했습니다. 우리가 AI를 비롯한 최첨단 시대를 살아갈지라도,

탐욕과 오만, 쾌락 추구와 호기심 같은 인간의 본성은 3천 년 전이나 지금이나 하등

다를 바가 없다고 말입니다. 결국 고전을 읽어야 하는 이유는, 고전이라는 거울을 통해

오늘날 우리 자신을 통찰하고 삶의 지혜를 얻기 위함이라고. 그리고 이번 <오디세이>

영화처럼 고전은 단순히 오래된 이야기가 아니라 보편적 주제와 메시지 덕분에 수많은

후대인들이 끊임없이 예술적 영감을 받아 재생산하는 작품이라는 결론으로 강연을

끝맺었습니다.

그날 저녁, 나는 오전 강의에서 주장했던 ‘고전의 생명력’을 직접 확인하는 경험을

하였습니다. 고양 어울림누리 극장으로 달려가 <창극 살로메>를 관람한 것입니다.

오스카 와일드(Oscar Wilde, 1854~1900)의 단막 비극 <살로메>는 성경 속 요한의

참수 사건을 모티브로 인간의 지독한 탐욕과 집착, 광기 어린 사랑을 다룬 극입니다.

그 퇴폐적 미학에 매료되어 직접 번역까지 했던 작품이기에, 한국의 ‘창극’으로

재탄생한다는 소식에 호기심을 억누를 수 없었습니다.

<창극 살로메>는 참으로 파격적이었습니다. 원작이 지닌 묵시록적 기괴함은 한국

창 특유의 폭발적인 성음과 한(恨)의 정서를 만나 한층 격정적으로 터져 나왔습니다.

소리꾼들이 가슴 밑바닥에서부터 끌어올려 내지르는 처절한 창법은 살로메와 인물들이

품은 지독한 집착과 절망을 더욱 실감나게 전달했습니다.

특히 이 공연은 남성 소리꾼이 살로메와 그녀의 어머니 헤로디아 역을 맡는 등 파격적인

배우 기용을 통해 새로운 시도를 했습니다. 국악기의 이색적인 음색과 어우러진

이 파격적 연출은 인간 근원에 자리한 결핍과 광기를 뿜어내며 객석을 완전히 압도했습니다.

이 공연의 의의는 고전 텍스트가 특정 시공간에 갇히지 않음을 입증한 데 있습니다.

19세기 말 유럽의 유미주의(唯美主義) 문학이 우리 전통 소리 예술인 창극으로 태어나

새로운 예술적 에너지를 창출했고, 창극이 한국 고전 소설이나 민담이라는 기존 소재의

틀을 깨고, 서양 문학을 수용해 우리 전통 미학으로 재창조될 수 있음을 증명했기 때문입니다.

영화 <오디세이>에서부터 <창극 살로메>에 이르기까지, 고전은 박제된 과거의 유물이

아니라 끊임없이 박동하는 '생명체'임을 여실히 보여줍니다. 끊임없이 새로운 옷을 입고

변주되는 고전은 지금도 우리에게 인간과 세상에 대한 질문을 던지며, 우리의 예술과 삶을

풍요롭게 살찌우고 있습니다. 온종일 그 사실을 충만히 느끼고 전파한 하루였습니다. 

출처 : 자유칼럼(https://www.freecolum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