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9년 전 돌아가신 아버지를 얼마나 존경하는지
아시는 분들이 많을 겁니다. 아버지는 저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의 존경을 받았습니다. 아버지는 밤중에
자신을 해치러 온 사람을 감복시켜 들고 온 칼을
두고 나가게 하신 '영웅'이니까요.
그런 아버지지만 상대하면 늘 지는 대상이 있었으니
바로 어머니였습니다. 어머니에게 몰리면 아버지는
"밖에 나가면 다들 내게 고개를 숙이는데. 저 조그만
여자만 나를 만만히 본단 말이야" 하시며 겸연쩍게
웃으셨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어머니는 아버지에게 좀
다정하게 굴 걸, 아버지를 좀 인정해 드릴 걸 하고
후회하신 적이 많았고, 이제는 병실에서 아버지와
만날 날을 기다리고 계십니다.
우리 부모님의 경우도 그렇지만, 부부란 일반적인
힘의 법칙이나 관계의 법칙을 적용할 수 없는 묘한
관계입니다. 솔 벨로의 단막 희곡 <The Wrecker
(파괴자)>에 나오는 아래 문장들을 보면, 벨로도
그 점을 간파했던 것 같습니다.
P. 185
Only the most ordinary men should become
husbands. Whatever they may dream of, when
you come right down to it women want their
husbands to be ordinary and to make no trouble.
Husbands are not heroes: heroes are not husbands.
That's all there is to it.
가장 평범한 사내들만 남편들이 되어야 해.
사내들이 무슨 꿈을 꾸든, 결국 여자들이 원하는
남편은 아무 문제도 일으키지 않는 평범한 남편이니까.
남편들은 영웅이 아니고 영웅들은 남편이 아니야.
그게 다야.
-- 솔 벨로 작품집 <오늘을 잡아라 (Seize the 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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