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리칸 블루 화분을 옮긴 후 허리가 고장나긴 했지만
고장은 제 탓이지 꽃 탓이 아닙니다.
회색 하늘에 아랑곳하지 않고 색색으로 피어 세상을 밝히는
꽃들은 한 송이 한 송이 다 등대입니다.
겨울을 이기고 봄으로 가는 꽃들이 특히 아름다운 것처럼
꽃집들도 2, 3월에 가장 아름답습니다.
거리에 꽃집이 없었다면 이 세상은 얼마나 컴컴했을까요?
아래에 일러스트포잇(illustpoet) 김수자 씨의 블로그
'시시(詩詩)한 그림일기'에 실린 꽃집 얘기를 옮겨둡니다.
맨 아래 글은 김수자 씨의 글입니다.
그림을 클릭하면 '시시한 그림일기'로 연결됩니다.
꽃집 - 박연준
illustpoet ・ 2018. 1. 23. 19:48
종이에 색연필
꽃집
박연준
빛이 빛에게
수분이 수분에게
가시가 가시에게
흙이 흙에게
조그마한 삽이 조그마한 삽에게
기대어 잔다
어떤 따뜻한 열기가 신발도 없이
살금살금 내려 앉고
이따금 문 위에 매달린 종이 찌르릉 소리를 내고
찬 기운을 구두코에 묻혀 들어온 사내가
잠든 장미 열 송이를 사가고
(열 송이의 잠이 부드럽게 증발하고)
달큼한 잠에 빠진 푸른 잎사귀들
깰까 말까, 따뜻하게 고민하는
길모퉁이 꽃집
밖에는 신호등이 깜빡깜빡
겨울 실내에 노랑빛이 화사하다.
만화영화 '달려라 하니'의 더 이쁜 주인공 버전이라 할만한 지인이, 2년여전 개인전 전시를 축하하며 선물한 노란 호접란이 잊을만하면 꽃을 피워 그녀를 떠올리게 한다. 종을 닮은 봉오리들이 하나, 둘 열리며 기운 없던 내게, 노랑 나비들이 열지어 박수를 보내는 모습으로 꽃잎이 벌어지니 웃음이 절로 나온다. 나쁜 마음으로 꽃집에서 꽃을 사는 사람은 없지 싶다. 사랑하고 아끼는 누군가의 얼굴을 떠올리며 꽃을 고르는 마음은 가장 행복한 순간이 아닐까? 당분간은 꽃집 들릴일 없으니 어여쁜 이 호접란을 그림으로 남겨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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