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노년일기 61: ‘38점’짜리 바느질 (2020년 11월 14일)

divicom 2020. 11. 14. 23:22

가끔 바느질을 합니다.

가족들의 양말도 꿰매고 바지의 허리나  길이를

줄이기도 하고 늘이기도 합니다.

때로는 긴팔 옷을 잘라 짧은 옷으로 만들기도 하고

원피스를 잘라 조끼를 만들기도 하는데

바느질을 하다 보면 언제나 중학교 때로 돌아갑니다.

 

제가 중학생일 때는 ‘수예’라는 과목이 있었습니다.

기본적인 바느질을 배운 다음 베갯잇에 수를 놓거나

액자나 병풍에 넣을 수예작품을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수예를 매우 싫어했습니다.

어려서부터 장식적인 것을 좋아하지 않아서인지

바느질을 할 줄 알면 되지 수놓는 것까지

학교에서 배워야 하는가 불만이 많았습니다.

수예 선생님이 수예 재료를 사라고 하면 하는 수 없이

샀지만, 수업시간에 수놓는 흉내만 낼 뿐 완성한

작품이 드물었고, 한참 소설 읽는 재미에 빠져 있을 때라

수예 시간에 책을 읽기 일쑤였습니다.

 

학기가 끝나 성적표를 받으니 수예 점수가

38점으로 나와 있었습니다.

40점 이하면 낙제라며 아이들이 수군댔지만

성적표에 처음 받아본 빨간 글씨가 오히려

재미있었습니다. 다만 한 가지 기분 나쁜 것은

수예 점수가 너무 낮으니 전 과목 평균도 낮아져서

석차가 뚝 떨어진 것이었습니다. 수를 아주 잘 놓는

유숙자라는 친구는 수예에서 98점인가 97점인가를 받아

2등이 되고 저는 7등이 되었습니다.

 

빨간 글씨 점수를 받던 당시에도 또 그 후에도 저는

그 일에 대해서 부끄러운 줄을 몰랐습니다.

책을 워낙 좋아하던 때라 책을 읽는 일이 수를 놓는

일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했었나 봅니다.

 

그때 일에 대해 부끄러워하게 된 건 꽤 오랜 시간이

흐른 후였습니다. 학생들과 공부를 함께 하고

여기저기서 강의란 것을 해보고 나서야 가르치는 즐거움과

괴로움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고, 제가 저질렀던 무례에

대해서도 반성하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성함도 얼굴도 떠오르지 않는 수예 선생님을

다시 뵐 수 있다면 허리 굽히고 고개를 깊숙이 숙여

사죄드리고 싶습니다. 수를 놓지는 않지만 그때 배운

바느질로 양말도 꿰매어 신고 바지도 줄여 입는다고

말씀 드리고, 그때 십대의 치기와 어리석음으로

선생님께 큰 결례를 하였으니 지금이라도 야단쳐 주시라고

빌고 싶습니다.

 

선생님, 죄송합니다.

가장 큰 죄는 어리석음과 무지에서 나옴을 절감합니다.

바느질을 하며 바늘에 찔릴 때마다,

바늘귀에 실을 꿰지 못해 여러 번 시도할 때마다,

선생님께 저지른 무례의 벌을 받는다고 생각하며

반성합니다.

 

선생님, 죄송합니다.

어디에 계시든지 부디 평안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