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노년일기 59: 어머니의 마지막 김장 (2020년 11월 8일)

divicom 2020. 11. 8. 12:13

어머니는 1930년 이른 봄에 태어났습니다.

일찍 부친을 여읜 탓에 열 살도 되기 전부터

노동을 하며 자랐고 스물에 결혼해

다섯 남매를 낳았습니다.

 

어머니의 아들딸들이 낳은 아들들이 또

아들딸들을 낳는 동안 어머니도 어머니의 삶도

많이 변했습니다. 늘 한방을 쓸 것 같던

남편은 오년 전에 저 세상으로 떠났습니다.

 

딸들은 꿈속에서 비단옷 입은 아버지를

만났다지만, 어머니는 한 번도 꿈속에서

남편을 만난 적이 없습니다. 야속하고

서운하면서도 ‘살아생전에 내가 잘못해주어

내 꿈엔 안 오는가‘ 생각하면 미안합니다.

 

어느새 아흔이 넘어 청력이 옛날 같지 않지만

그것을 제외하면 그런대로 살만합니다.

그러니 올 겨울 아픈 둘째딸네 김장을 해주는 건

당연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한창 때는 백 포기,

이백 포기도 했으니 배추 여섯 통 김장하는 건

아무 것도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마침 함께 사는 맏아들 내외가 시제를 모시러

선산에 간 사이에 해치우기로 며느리의 동의를

얻었습니다. 맏딸은 극구 반대했지만, 배추를 사다

절이고 양념을 준비했습니다. 그리고 그 날이 끝나기

전에 깨달았습니다. 자신의 체력이 자신이 생각했던

것과 전혀 다르다는 것을.

 

몸 약한 맏딸이 아픈 것을 알면서도 어머니는

다음 날 아침 일찍 맏딸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전화를 받는 딸의 목소리를 들으며 어머니는

실망했습니다. 목소리에서 아픔이 묻어났습니다.

그래도 혹시나 하며 오늘 올 수 있느냐고 물으니

딸은 갈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래, 잘 쉬어라

하고 전화를 끊는데 눈물이 나올 것 같았습니다.

허리가 너무 아파 잠시 누웠다 일어나 김장을 해야지

마음먹었습니다.

 

삼, 사십 분 누웠다 일어나 절여두었던 배추를

헹구는데, 큰딸이 죽과 케이크 상자를 들고

들어왔습니다. 딸이 시키는 대로 전복죽을 먹고

케이크도 먹었습니다. 죽도 케이크도 맛있었지만

딸과 함께라는 생각이 온몸에 힘을 주는 것

같았습니다. 평생 처음으로 딸에게 ‘네가 내

구세주다’ 하니, 딸이 “내가 엄마 구세주라는 걸

깨달으시는 데 육십여 년이 걸렸네요!“ 하며 웃었습니다.

 

조금 있으니 둘째 딸이 왔습니다. 몸이 아파

일은 할 수 없겠지만 둘째 딸이 오니 응원군이

온 것처럼 힘이 났습니다.

 

어머니는 두 딸과 함께 생애 일흔 번째 김장을 했습니다.

육십 대 중반 암에 걸려 김장을 걸렀던 한 해를 빼고는

어머니는 해마다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김장김치를

만들었습니다.

 

김장이 끝난 후 어머니가 앓아 누우시지 않을까

걱정하는 두 딸에게 어머니는 약속했습니다.

이제 다시는 김장을 하지 않기로. 자녀들 중

누군가가 어떤 사정으로 김장을 할 수 없을 때는

김장을 해주는 대신 판매되는 김치 중 가장

맛있는 김치를 사먹으라고 돈을 주기로.

 

마침내 김장이 끝났습니다. 아무 일 없었던 것 같은

부엌 식탁에 앉아 어머니는 둘째 딸이 삶아온 밤에

율무차를 곁들여 마시며 두 딸과 담소와 웃음을 나누었습니다.

 

그 밤, 어머니는 오랜만에 깊은 잠에 빠졌습니다.

‘구세주’와 ‘응원군’ 덕에 만발했던 웃음꽃의 흔적을

간직한 채, 어머니의 마지막 김장이 얼마나 오랫동안

두 딸의 마음을 아프게 할지 생각할 겨를도 없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