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노년일기 58: 마음의 크기 (2020년 10월 30일)

divicom 2020. 10. 30. 20:15

전 세계를 휩쓸고 있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는

사람의 크기, 마음의 크기를 보여줍니다.

 

두려움을 이용해 돈을 벌고 영향력을 키우려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자신도 재앙을 겪고 있지만 타인들의

불행을 안쓰러워하며 그것을 덜어줄 방법을 모색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사람의 크기는 남을 생각하는 마음이

얼마나 큰가로 잴 수 있겠지요.

 

코로나19가 오기 전에도 가장 중요한 덕목이었던 '친절'은

코로나 세상에서 더욱 의미 있는 덕목이 되었습니다.

두려움에 사로잡힌 불안한 사람들에게 친절은 매우 큰 힘이

되어주니까요. 게다가 친절은 돈을 쓰거나 특별한 무언가를

하지 않고도 베풀 수 있으니, 요즘 같은 세상에 꼭 맞는

덕행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제가 요즘 겪은 일들 중엔 친절보다 불친절의 순간이

더 또렷합니다.

 

신촌의 오래된 중국식당에서는 QR코드를 찍으라는 직원에게

QR코드가 없으니 손으로 적겠다고 했다가 ‘어떻게 QR코드가

없을 수 있지?’ 하는 투의 눈총을 받았습니다.

 

스마트폰을 쓰지 않아서 그렇다고 설명하고 손으로 썼지만,

그 직원의 ‘맨스플레인(mansplain)’이 계속 이어지는 바람에

음식을 먹지 않고 식당을 나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사람이 평직원이 아니고 ‘이사님’이라서 직원을 가르치듯

저를 가르치려 했던 것인지, 아니면 제 머리가 하얀 것을 보고

디지털문명에 뒤떨어진 할머니를 교육해야 한다는 일념으로

그랬던 것인지는 모르겠습니다.

 

며칠 전에는 고려대학교부속 구로병원 장례식장에서

비슷한 경험을 했습니다. 장례식장 건물로 들어서자마자

QR코드를 찍으라는 직원의 태도가 제법 고압적이었습니다.

 

중국식당에서처럼 QR코드가 없으니 손으로 적겠다고 했다가

그때 받았던 눈총과 비슷한 눈총을 받았습니다.

 

주민등록증을 보여 달라고 해서 보여주니

방문객 인적사항 기록 문서에 제 이름을 적고 전화번호를

물었습니다. 번호를 알려주며, 이제는 문서에 전화번호만 쓰고

이름은 쓰지 않게 되어 있는데 왜 이름을 쓰느냐고 물으니

‘여기선 쓴다’고 가르치듯 말했습니다.

 

왜 여기만 그러느냐고 재차 묻는데 저쪽에 있던 직원 하나가

다가와 ‘여기서는 그렇다’고 목청을 높였습니다. 눈이 나쁜 만큼

귀가 예민한 저는 그 직원에게 큰소리로 말하지 말고 저리

가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가 가는 것을 보고 그 자리를 떴습니다.

망자와 유족을 위로하러 간 자리만 아니었으면 그렇게 순순히

물러나지 않고, 120이나 질병관리청 같은 곳에 신고를 하거나

큰소리를 냈을지도 모릅니다.

 

처음엔 이름과 전화번호를 썼지만 그로 인해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한 후엔 이름은 쓰지 않기로 했는데

왜 고려대학교 구로병원만은 이름과 전화번호 모두를 쓰라고

하는지도 알 수 없는 일이었지만, 방문객에게 왜 그리도

불친절한 것인지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장례식장은 죽은 사람과 산 사람이 마지막 인사를 나누는 곳인 만큼

방문객들의 마음이 다른 곳 방문객들과는 다르고, 그래서 더욱

친절해야 하는 게 아닐까요? 게다가 모든 방문객은 잠재적 고객이니

사업적으로도 친절한 것이 이익이 될 겁니다.

 

그 두 직원이 그렇게 고압적이었던 이유는 뭘까요?

병원에서 받는 대우가 나빠 스트레스가 쌓였던 걸까요?

아니면 야근하느라 잠을 못 자서 짜증이 났던 걸까요?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속 좁은 저는 두고두고 주변사람들에게 얘기할 겁니다.

살아서든 죽어서든 고려대학교 구로병원에는 가지 말라고. 

 

물론 저도 제가 부끄럽습니다. 코로나19 QR코드 분쟁으로 드러나는

제 마음의 크기가 겨우 이만하다는 것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