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이 세상에 계실 때 가끔 모시고 가던 식당에
어머니와 둘째 동생과 갔습니다.
예정보다 늦게 도착한 탓에 배가 고팠습니다.
주요리가 나오기 전에 동생과 함께 푸성귀 반찬을
거의 다 먹어치웠습니다.
마침내 주요리가 나왔습니다.
이미 익혀 나온 주요리는 식지 않게 식탁 가운데
가스 불판에 놓였습니다. 즐겁고 ‘배불리’ 먹었습니다.
과식은 적(敵)인데 깜빡 잊은 것이지요.
동생과 어머니가 화장실에 간 사이
갑자기 속이 울렁거리기 시작했습니다.
창문을 열고 싶었지만 통창이라 열리지 않았습니다.
두 사람의 짐까지 챙겨서 밖으로 나갔습니다.
나중에 들으니 동생도 저와 비슷한 증세로 화장실에 가서
구토를 했고 구토를 하고 나니 속이 편해졌다고 했습니다.
저는 계속 메스꺼운 상태에 머물렀습니다. 물약 소화제
한 병을 사 마시고 증세가 가라앉길 기다렸습니다.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생각했습니다.
아버지, 어머니와 함께 가던 곳에 어머니만 모시고 가서
괴로웠던 걸까? 빈속에 반찬을 많이 먹어 위에
부담을 주었을까? 일산화탄소에 예민한 체질이
가스 불에서 나온 가스를 견디지 못한 것일까?
과식 탓일까?...
그날 이후 닷새가 지난 지금까지도 커피를 마시지 못합니다.
커피 덕에 고양되던 기분이 자꾸 가라앉으려 합니다.
탈은 젊어서도 났지만 나이 들수록 회복이 더뎌지는 것 같습니다.
이 몸에 깃들어 오래 살아온 만큼 몸의 이상 또한 미리 예측하고
예방할 수 있어야 하는데... 어리석은 흰머리입니다.
커피는 마시지 못해도 산책은 할 수 있어 다행이지만
언젠가는 산책도 할 수 없는 날이 올지 모릅니다.
늙어간다는 건, 하고 싶지만 할 수 없는 일이
많아지는 것일까요?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없을 땐 어떻게 해야 할까요?
창의력을 발휘해서 방법을 찾아봐야겠습니다.
아무리 찾아도 찾을 수 없을 땐... 일단 쉬어야겠지요.
뭔가를 아무리 찾아도 찾지 못할 때 잠시 쉬었다
찾으면 오히려 찾게 된다는 걸 나이 덕에 배웠습니다.
혹시 그 쉬는 시간을 위해 죽음이 찾아오는 건 아닐까요?
쉬면서 준비하라고, 하고 싶지만 하지 못했던 일을
할 수 있는 시간이 오면 바로 그 일을 할 수 있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