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그제 일간지의 논설위원에게서 우스운 얘기를 들었습니다.
모 그룹의 회장이라는 사람이 갑자기 논설위원들에게 밥을 먹자고 하더랍니다.
너무 쇼트 노우티스(short notice)라 논설위원들이 못 간다고 했는데
알고 보니 그 사람이 자기 그룹의 회장직을 자발적으로
그만둔다는 얘기를 하기 위해서 그 자리를 만들려고 한 것 같다는 겁니다.
논설위원들과의 회동이 이루어지지 않아서인지
이 사람은 결국 기자회견에서 자신의 회장직 사퇴를 발표했는데
'그동안 금수저를 물고 있느라 이가 다 금이 간 듯하다'고 했다고 합니다.
본인은 대단한 일을 했다고 생각할지 모르나 저로선
물러나고 싶으면 조용히 물러날 것이지 웬 요란일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 사람은 '떠날 때는 말없이'도 모르는 걸까요?
문제의 이 사람은 바로 코오롱그룹의 이웅렬 회장.
'금수저를 물고 있느라 이가 다 금이 간 듯하다'는 말이
제겐 좀 거슬립니다. 저는 금수저를 물어본 적도 없지만
이에 금이 많이 가 고생하고 있으니까요.
떠날 때의 언행, 비유할 때 주의해야 할 점,
자신이 아는 세계의 작음을 아는 것 등,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이웅렬 씨의 기자회견...
우리에게 또 한 사람의 반면교사가 생긴 걸까요?
오늘 아침 경향신문 '여적' 칼럼에 이대근 논설고문이 바로
이웅렬 회장 얘기를 썼기에 아래에 옮겨둡니다.
이 고문의 글에서 마지막 문장 일부는 고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고문은 '그토록 잘난 체하던 잡스도 자신을 이렇게 부르지 않았다.'고 썼는데
저는 '그토록 잘났던 잡스도 자신을 이렇게 부르지 않았다.'고 써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족: 이웅렬 씨, 청바지를 입는다고 '청년'이 되는 게 아닙니다.
여적]이웅렬과 4대 세습
스티브 잡스는 1985년 애플에서 쫓겨났다. 자기가 만든 회사지만 경영에 실패하자 이사회가 퇴출한 것이다. 트래비스 칼라닉은 지난 6월 자신이 세운 우버에서 물러났다. 사내 불건전한 문화를 두고 물의가 빚어지자 이사회가 그에게 책임을 물었다. 이사의 일원으로 칼라닉도 참석한 이사회에서 그는 자신의 퇴진에 한 표를 던졌다. 지난 7월 존 슈내터는 피자 체인 파파존스에서 축출됐다. 자기 이름을 따서 회사명을 짓고 광고에도 출연했을 정도로 회사와 창업자가 동일시되던 회사였다. 존 슈내터는 곧 파파존스였다. 그래도 이사회는 그가 인종차별 발언을 하자 바로 쫓아냈다.
이 기준을 한국 재벌에 적용하면, 직원을 지속적으로 학대한 조양호 일가가 여전히 한진그룹을 장악한 현실을 설명할 수 없다. 불법·비리·부도덕 행위를 줄기차게 하면서도 재벌 총수가 무탈하게 4대 세습까지 하는 성공담을 이해할 수 없다. 총수는 무기한 경영권 및 세습권이라는 신성불가침의 특권을 타고 났다는 재벌권리 장전이라도 있어야 한다. 그런데 최근 이런 고정관념이 깨지는 것 같은 소리가 들려왔다. 이웅렬 코오롱그룹 회장이 “그동안 금수저를 물고 있느라 이가 다 금이 간 듯하다”면서 그룹 경영에서 손을 떼겠다고 말한 것이다. 그는 “청년 이웅렬로 돌아가 새롭게 창업의 길을 가겠다”고도 했다. 세습 경영을 그만두겠다는 뜻으로 오해할 만한 발언이다.
그는 회사의 판단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의 마음대로 나오기로 한 것이다. 마음이 바뀌면 다시 돌아갈 수도 있다는 뜻이다. 그건 코오롱이라는 기업이 그의 사유물이라는 증거다. 현재 그의 그룹 지분 50.4%는 불변이다. 겨우 30대인 아들에게 경영권을 넘기는, 4대 세습도 진행 중이다. 자신은 금수저를 그만 물겠다면서도 아들에게는 물릴 생각인 거다.
안정적인 후계체제를 구축했으니 자유롭게 살기로 했다면 그야말로 그의 자유에 속하는 일이고, 그의 개인 문제다. 자기희생의 결단이거나 무슨 역사적 선언을 한 것처럼 포장할 수 없는 일이다. 그는 그룹 홈페이지에서 자신을 ‘최고 비전 창조자(chief vision creator)’라고 소개했다. 그토록 잘난 체하던 잡스도 자신을 이렇게 부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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