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문장

KT 화재와 킬로그램(2018년 11월 26일)

divicom 2018. 11. 26. 13:51

엊그제 KT 아현지사에서 발생한 화재는 몇 시간의 불편과 손해보다 훨씬 큰 철학적 질문을 남겼습니다.

정말 이렇게 살아도 되는 걸까? 모든 것을 컴퓨터에 의지하면서?


사용하는 사람은 줄고 유지비는 많이 든다고 천덕꾸러기가 되었던 공중전화들 앞에

오랜만에 사용하려는 사람들의 줄이 길었습니다.


'빠름'이 최고의 가치가 된 세상에서 엊그제 KT에서 일어난 화재는

빠름보다 더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암시합니다.


며칠 전 신문에서 130년 만에 킬로그램의 정의가 바뀌었다는 기사를 보았습니다.

정의를 바꾸는 변화의 속도...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아래는 경향신문 기사입니다.



130년 만에 ‘㎏의 정의’가 바뀐 까닭은?

김기범 기자 holjjak@kyunghyang.com

기원전 3세기 중국을 처음으로 통일한 진나라 시황제는 거대한 제국을 다스리기 위한 조치로 도량형을 통일했다. 통일 전 나라마다 달랐던 길이, 무게의 단위를 통일한 것은 법률, 행정조직의 통일과 함께 중국을 하나로 만들기 위한 필수조치였다. 국가 발전을 위한 교역의 활성화와 과학기술 개발에서 도량형 통일이 필수적이라고 본 것은 진시황만이 아니었다. 조선의 세종대왕 역시 1430년 지역마다 달랐던 길이·넓이·부피·무게 등의 단위를 정비한 바 있다.

프랑스혁명 당시에도 영주들이 도량형을 악용해온 것을 개혁하기 위해 혁명세력이 도량형 통일을 추진했다. 1799년 마련된 미터법은 나폴레옹의 정복전쟁을 통해 유럽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1875년 5월20일(세계측정의날) 유럽 국가 등 17개국이 미터법을 국제표준으로 삼는 미터협약을 체결했다. 현재처럼 7개 단위가 국제단위계(SI)의 기본단위로 채택된 것은 1960년 파리에서 열린 제11차 국제도량형총회에서였다. 미터법을 기준으로 확립된 도량형 체계인 국제단위계의 기본단위는 초(s·시간), 미터(m·길이), 킬로그램(㎏·질량), 암페어(A·전류), 켈빈(K·온도), 몰(mol·물질의 양), 칸델라(cd·광도) 등이다. 이들 7개 단위와 이들에서 파생된 22개 유도단위는 현재 국제표준인 동시에 미국, 미얀마, 라이베리아를 제외한 전 세계 모든 국가에서 법정단위로 채택돼 있는 상태다. 한국은 1959년 미터협약에 가입한 뒤 1964년 제정한 계량법에 따라 미터법을 전면 실시했다. 유도단위란 기본단위의 곱과 나누기로 표현이 가능한 단위들을 말한다. 예를 들어 힘(N)은 ㎏·m/s², 일률(W)은 ㎏·㎡/s³으로 나타낼 수 있다.

한국표준과학구원(KRISS)에 따르면 지난 13~16일 프랑스 베르사유에서 열린 제26차 국제도량형총회(CGPM)에서는 이 같은 기본단위 7개 가운데 4개의 정의가 바뀌었다. 이날 재정의된 단위는 ㎏, A, K, mol이다. 인류 전체가 공통으로 사용하던 단위들 가운데 이렇게 많은 수의 단위의 정의가 한꺼번에 바뀐 것은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다. 새 정의가 사용되는 2019년으로부터 130년 전인 1889년부터 기준으로 사용됐던 원기(原器)들 역시 역사의 뒤편으로 퇴장하게 된다.

총회의 핵심 안건은 국제단위계의 7개 기본단위 정의에 기본상수를 활용하는 내용이었다. ㎏은 플랑크 상수, A는 기본전하(e), K은 볼츠만 상수, mol은 아보가드로 상수라는 고정된 값의 기본상수를 기반으로 단위가 정의됐다. 상수는 물질의 물리적·화학적 성질을 표시하는 수치를 말한다.

㎏의 정의가 달라진 것은 프랑스 파리의 국제도량형국(BIPM)에 보관돼 있던 국제킬로그램원기인 ‘르그랑 K(Le Grand K)’의 질량이 변했기 때문이다. 1889년 마련된 ㎏의 기준인 원기는 백금 90%와 이리듐 10%로 이뤄진 물체로 높이와 지름이 각각 39㎜이다. 당시 과학자들은 지구의 북극에서 적도까지의 거리를 1000만분의 1로 나눈 값을 1m로 정의했다. 이어 1m의 100분의 1인 1㎝를 각 변으로 하는 입방체에 채운 물의 질량을 1g으로 정의했다. 국제킬로그램원기는 1g의 1000배인 1㎏을 나타낸 것으로 파리 근교의 국제도량형국 금고에 보관돼 있다. 국내에는 이 원기의 복사본 40개 중 하나가 표준과학연구원 금고에 있다.

그런데 1세기가 넘는 시간이 지나는 동안 원기가 공기 중에 노출되며 오염물질이 묻고 산화된 데다 이를 세척하는 과정에서 오차가 발생했음이 1989년 확인됐다. 오차는 약 50㎍(마이크로그램·0.00005g), 즉 머리카락 한 올 또는 모래 한 톨 정도의 무게가 늘어난 것이다. 과학자들은 그동안 원기가 공기와 닿으면서 변하는 것을 우려해 50년에 한번꼴로만 꺼내 측정을 했지만 변화를 막을 수는 없었다. 일상생활에서 수십㎍의 차이는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 아주 작은 차이지만 산업현장과 과학기술계에서는 무시할 수 없는 수치이다. 정밀한 수치를 요구하는 업계나 학계에서 원기의 질량이 달라졌다는 것은 측정값 자체를 신뢰할 수 없는 상황인 것이다.

킬로그램원기의 불안정성은 질량에만 해당되는 문제가 아니다. 질량의 기본단위가 달라지면 기본단위 조합에 의해 정의되는 유도단위들 즉, 힘, 압력, 에너지의 단위마저도 바뀐다. 앞으로는 이런 변화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국제도량형총회는 각 단위를 영원히 변하지 않는 물리상수로 정의하기로 했으며 1㎏은 플랑크 상수라는 기본상수가 부여됐다.

플랑크 상수를 측정하기 위해 마련된 것이 키블 저울로 현재까지 키블 저울을 만든 나라는 미국, 캐나다 등 6곳뿐이다. 키블 저울은 저울 한쪽에 물체를 달고, 다른 한쪽에는 코일을 감아 전류를 흘리면서 물리적 에너지와 전기적 에너지를 비교해 질량을 재는 저울이다. 질량, 중력, 전기, 시간, 길이 등 수많은 측정표준의 종합체라고 할 수 있는 키블 저울은 물체의 질량을 10억분의 1 수준 정밀도로 측정할 수 있다. 한국표준과학연구원은 현재 1억분의 1 수준의 정밀도까지 도달한 상태로 앞으로 3년 내에 선진국 수준 정밀도를 보이는 키블 저울을 만든다는 목표를 세워놓고 있다. 키블 저울이 없는 나라들은 자체적인 질량표준 없이 타국이 측정한 질량표준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 외에 다른 3개의 기본단위 역시 변동성을 지니거나 불안정하다는 문제점을 안고 있었다. mol은 탄소의 질량을 바탕으로 정의되는 탓에 질량의 기준인 ㎏에 오차가 생기면 바로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온도의 경우 특정 물질에 의존한다는 한계를 안고 있었다. K은 ‘물의 삼중점의 열역학적 온도의 273.16분의 1’이라는 정의를 지니고 있었는데 물의 삼중점은 동위원소의 비율에 따라 달라진다는 문제점이 있었던 것이다. 물의 삼중점이란 기체와 액체 그리고 고체 3가지 상태가 동시에 존재하는 온도를 말한다. 동위원소란 원자번호는 같지만 질량이 서로 다른 원소를 말한다. 양성자 수는 같지만 중성자의 수가 다르다.

A는 정의에 애매한 표현이 사용돼 있다는 한계가 있었다. 1A의 기존 정의는 ‘무한히 길고 무시할 수 있을 만큼 작은 원형 단면적을 가진 두 개의 평행한 직선 도체가 진공 중에서 1m의 간격으로 유지될 때, 두 도체 사이에 m당 2×10-7(-7제곱) N의 힘을 생기게 하는 일정한 전류이다’였다. 학계에서는 “무한히 길고 무시할 수 있을 만큼”이라는 내용이 지극히 모호할 뿐만 아니라 실현하기 어렵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을 비롯한 4개 단위의 정의가 바뀐 것은 국제단위계의 목표에 부합되는 내용이기도 하다. 국제단위계의 궁극적인 목표는 불변의 기준이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미 불변의 기준이 된 m 등을 포함해 이들 7개 단위는 앞으로 바뀔 일이 없는 단위가 되었다. 이날 개정된 단위의 정의는 2019년 5월20일(세계측정의날)부터 공식 사용될 예정이다. 다만 국제단위가 재정의된 것과 상관없이 시민들이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단위는 동일하게 유지된다.

㎏에 앞서 m가 재정의된 것 역시 ㎏과 마찬가지로 인공물에 의한 정의는 그 인공물의 변화에 따라 언제든지 변할 수 있다는 한계를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1983년 재정의되기 전 m의 정의는 국제미터원기의 길이였으며 재정의된 내용은 빛의 속력을 기준으로 삼은 것으로 빛이 진공에서 2억9979만2458분의 1초 동안 진행한 경로의 길이다. 빛이 극히 짧은 시간 동안 진행한 경로를 측정하는 것이 가능할 만큼 과학기술이 발전한 덕분에 정의할 수 있었던 내용이다. 과학자들은 당대의 표준을 그 시대 과학기술의 발전 정도를 볼 수 있는 지표로 여긴다. 배리 잉글리스 국제도량형국 국장은 ‘타임’지와의 인터뷰에서 “이제 인류는 세계를 측정하는 데 있어 물체의 한계에 얽매이지 않게 됐으며 더 정확하고, 과학 발전을 가속화할 수 있는 단위를 갖게 됐다”고 말했다.



원문보기: 
http://biz.khan.co.kr/khan_art_view.html?artid=201811182103005&code=610100#csidx0d28518b0074fbf96163b50f1c014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