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문장

죗값이 껌값인 나라(2018년 10월 21일)

divicom 2018. 10. 21. 18:17

나라가 왜 이렇게 악화되는 걸까, 왜 파렴치한 범죄가 갈수록 늘어날까?

곰곰 생각해보면 법이 너무 느슨하고 죄에 대한 벌이 약해서 그렇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제 경향신문에 이병철 시인이 쓴 글에 공감할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시선]죗값이 껌값이라서

이병철 시인2016년에 방영된 드라마 <시그널>을 세 번쯤 봤다. 얼마 전 채널을 돌리다 우연히 마지막 회가 재방송되고 있어 잠깐 봤는데, 실수였다. 다 아는 내용인데도 궁금해서 1화부터 16화까지 또 몰아봤다. 그러느라 며칠 잠도 못 자고 생활이 피폐해졌다. 나처럼 그 드라마를 기억하는 이들에게는 배우 조진웅이 연기한 이재한 형사의 대사들이 각인되어 있다. “죄를 지었으면 돈이 많건 빽이 있건 죗값을 받게 해야죠. 그게 우리 경찰이 해야 될 일 아닙니까?”라고 묻는 장면은 특히 인상적이다.

‘죗값’이라는 단어가 내내 생각에서 떠나지 않는다. 모든 게 다 비싼데 왜 죗값만 턱없이 싼 것일까. 서울 강서구의 PC방에서 30세 남성이 “불친절하다”는 이유로 20대 아르바이트생을 흉기로 잔혹하게 살해했다. 경찰은 이 극악무도한 살인범이 “10년째 우울증을 앓고 있다”고 밝혔다. 심신미약 상태에서 우발적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인정될 경우 중형을 피할 수 있을 것이다. 출동한 경찰의 화해 권고 후에도 분을 이기지 못해 집에 있는 흉기를 가지고 와 피해자를 수십차례 찌른 계획살인임에도 말이다. 우발적이든 계획적이든 사람 죽이는 일이 너무 쉽고 흔하다. 두려움이나 양심의 가책 따위는 없다. 죗값이 싸기 때문에, 죗값이 껌값이라서.

술에 취해 심신이 미약하니 10년, 조현병 때문이니 7년, 음주운전으로 한 가정을 몰살시켰지만 초범이니까 5년, 동급생을 감금 및 폭행, 강간, 성고문 해도 미성년자니까 3년…. 이쯤 되면 죗값 바겐세일, 죗값 ‘눈물의 땡처리’나 다름없다. 다 치러지지 않은 죗값은 결국 죄 없고 선량한 이들이 목숨으로 치른다. 싼값으로 용서를 줍다시피 한 범죄자들은 출소해서 또 사람을 죽일 것이다. ‘몇 년 살고 나오면 그만’이니 ‘가성비’ 좋다고, ‘밥 주고 재워주는 슬기로운 감옥 생활 꽤 할 만하다’고 여길 테니 말이다. 그들이 다 치르지 않은, 앞으로도 치르지 않을 죗값 때문에 아무 잘못 없는 우리 가족과 이웃이 죽임당하고 성폭행당하고 벽돌에 머리가 깨지고 칼에 찔린다.

알바니아 소설가 이스마일 카다레가 쓴 <부서진 사월>은 ‘카눈’에 대한 이야기다. ‘카눈’은 알바니아의 오래된 관습법이다. “피는 피로 값을 치른다.” 누군가 살해되면 그 가족은 ‘피의 복수’를 할 수 있다. 살인자나 그 집안의 남자를 죽일 수 있는 권리를 보장받는 것이다. 그렇게 ‘피의 복수’는 죽고 죽이는 끝없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이 폭력적이고 야만적인 관습법은 1900년대 초에 사라졌다가 1990년대에 들어 다시 부활했다. 공산정권이 무너진 후 새로 들어선 정부가 너무나도 부패했기 때문이다. 부패한 정부와 공권력 아래서 법이 제 기능을 못하자 일부 알바니아인들은 옛 관습법인 카눈을 따르기 시작했다. 필리핀에서 두테르테가 대통령이 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마약, 강도, 살인, 성범죄 등 강력범죄를 통제하지 못하는 사법체계를 불신하던 국민들은 “흉악범을 모두 죽이겠다”고 선언한 두테르테에게 환호했다.

현대의 법은 고도로 체계화되었으나 법이 닿지 못하는 구석이 있다. 법이 손쓸 수 없는 슬픔과 고통이 넘쳐난다. “법대로 하라”는 말은 힘을 잃어가고, 때로는 법이 억울한 피해자에게 2차 가해를 하기도 한다. 우리나라 법체계는 알바니아나 필리핀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우수하다. 다만 죗값이 비싸야 법에도 힘과 권위가 생긴다. 법이 무섭게 느껴져야 한다. 제 손에 들린 칼보다 법 심판의 칼날이 훨씬 날카롭다는 걸 알면 칼을 내려놓을 수밖에 없다. 이러다 내가 죽는다는 불안감이 들어야 한다. 감히 죄 지을 엄두조차 못 내야 한다. “내 법에는 공소시효가 없다”며 자신이 직접 살인범을 처단하겠다던 ‘개구리소년’ 아버지의 피 맺힌 절규를 아직 기억한다. 영화 <밀양>에서 전도연은 신에게 따져 묻는다. “내가 아직 용서 안 했는데 누가 용서를 해?”라고.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810192058025&code=990100#csidx61ac349a2bbebe4a49868a69b594cf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