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행

한국에서 제인 구달이 나오지 못하는 이유(2018년 8월 29일)

divicom 2018. 8. 29. 10:35

위대한 동행처럼 기쁨과 힘을 주는 존재는 없을 겁니다.

제인 구달(Jane Goodall)은 바로 그런 동행입니다.

제가 하얗게 변해가는 머리칼을 보며 즐거워하는 이유 중 하나는 구달 선생입니다.

언젠가 그분의 사진을 보고 하얗게 센 머리가 참 아름답다고 생각했거든요.


조금 전 오마이뉴스에서 "'타잔' 꿈꾸던 20대 여성.. 그가 이룬 놀라운 업적'이라는 제목의

글을 읽었습니다. 구달 박사 얘기입니다. 이 기사는 EBS 국제다큐영화제(EIDF)에서 상영됐던

구달 박사 다큐에 대한 것입니다. 

기사 말미의 '덧붙이는 글'에 보니 "EBS의 온라인 VOD 서비스 플랫폼 'D-Box'에서

오는 9월 2일까지 무료로 시청이 가능합니다."라고 쓰여 있습니다.


1934년 런던에서 태어난 구달은 아프리카에서 오랫동안 침팬지들과 함께 생활하며 

아무도 해내지 못한 연구를 해냈습니다.

그가 세계적인 침팬지 전문가가 되고 환경운동가가 된 것은 어릴 때 화면에서 타잔을 보고 

자신도 아프리카에 가서 동물들과 함께 살고 싶다는 꿈을 꾸게 되어서라고 합니다.

EBS의 다큐를 보거나 그의 책 <희망의 이유: Reason for Hope>를 보면

그가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습니다.


구달 박사는 <희망의 이유>에서 자신은 '정말로 희망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지만

저는 "한국에 대해서도요?'라고 묻고 싶습니다. 

엊그제 카페에서 본 엄마들 같은 사람이 많기 때문입니다.


멋지게 차려 입은 여성 둘이 아이들 얘기를 했습니다. 

꾸민 모습을 보면 20대지만 말투와 얘기의 내용으로 보면 30대 말이나 40대 초반인 것 같았습니다. 

카페는 작고 그들의 목소리는 크니 그들과 제가 일행인 듯 대화 내용이 또렷이 들렸습니다.


한 엄마가 기가 막힌 일이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딸이 '징그러운 벌레'를 들고 들어오기에 "야! 너 그 징그러운 거 왜 갖고 왔어? 

엄마 괴롭히려고 그러지?"하고 소리를 질렀더니 아이가 울면서 아니라고 했다는 겁니다.

그러자 상대편이 맞장구를 쳤습니다. "어머, 징그러, 나도 벌레는 질색이에요."

두 사람은 십대나 이십 대 여성들이 가끔 보이는, 보호본능을 자극하는 듯한 제스처를 교환하며

아이들 학원 얘기를 이어갔습니다.


곧 40세가 될 제 아이의 초등학교 때가 떠올랐습니다.

어느 날 제가 외출했다 돌아오니 마당에서 놀던 아이가 달려와 손을 쫙 펼쳐 보였습니다.

"엄마, 예쁘지?"

아이의 손엔 제법 긴 푸른 색 애벌레가 누워 있었습니다. 

저도 카페의 여성들처럼 벌레를 싫어했습니다. 

숨이 멎는 것 같았지만 아이를 놀라게 하거나 벌레에 대한 편견을 주고 싶진 않았습니다.

"으응, 정말 예쁜데?"

"엄마, 한 번 만져 보실래요? 정말 부드러워요." 아이의 손이 제 코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애벌레 양편으로 애벌레 하얀 솜털이 길을 그리고 있었습니다.

"아, 아니야, 예쁘긴하지만 만지고 싶진 않아."

"엄마, 무서워요?"

"무섭긴! 얘는 이렇게 조그맣고 나는 이렇게 큰데 내가 왜 얘를 무서워 해?" 아이는 더 권하지 않고

애벌레를 놓아준다며 달려갔습니다.


이제 아이는 저보다 크게 자랐습니다. 세상의 기준으로 보면 성공한 사람이 아니지만 

늘 누군가를 돕거나 구해줍니다. 사람을 돕는 건 물론이고, 오염된 해안의 물고기, 

빗속에서 우는 새끼 고양이, 뒤집힌 채 버둥거리는 딱정벌레, 다리 다친 새들을 구합니다. 

저는 그런 아이가 고맙고 자랑스럽습니다.

그리고 혼자 속으로 아이에게 편견을 심지 않은 걸 기뻐합니다.

모든 생명체에 대한 사랑은 편견 없는 마음에서 시작하니까요.


<희망의 이유>에 보면 구달 선생은 아주 어려서부터 온갖 동물을 좋아했고 

18개월쯤에는 지렁이를 한움큼 모아 침대 옆에 갖다놓았다고 합니다.

그의 어머니는 '징그럽다!'고 소리치는 대신 "제인, 지렁이들을 여기 두면 죽는단다. 

흙에 있어야 돼."라고 말씀하셨고, 그 말을 들은 아기 제인은 얼른 지렁이들을 모아 들고 

아장아장 밖으로 나갔다고 합니다.


구달의 어머니는 '내가 아프리카에 가면 타잔의 애인 제인보다 더 잘 할 수 있다'고 말하는 딸을

한 번도 핀잔한 적이 없을 뿐만 아니라, 이십대 초반에 아프리카에 간 딸이 있던 지역이 위험해 

보호자가 필요하다는 말을 듣자 스스로 그곳에 가서 5개월 동안이나 딸과 함께 있었다고 합니다. 


구달의 어머니가 지렁이를 보고 '아이고 징그러워!'하고 소리를 질렀거나,

'계집애가 아프리카엔 뭐하러 가냐'고 하는 어머니였다면

오늘의 제인 구달은 없었을 겁니다.


'여자는 약하다. 그러나 어머니는 강하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여자는 강하다. 그런데 어머니는 더 강하다'라는 말로 바뀌어야 합니다.

사나운 어머니는 아이들의 기를 죽이지만 강한 어머니는 아이들의 잠재력을 키워 줍니다.

그러나 지금 한국에는 강한 어머니보다 사나운 어머니, 혹은 '약한' 어머니들이 많아 보입니다.

아무래도 제인 구달 같은 사람이 나오긴 어려울 것 같습니다.

아래 링크를 클릭하면 오마이뉴스에 실린 제인 구달 이야기와 사진을 볼 수 있습니다.

http://v.movie.daum.net/v/201808281351003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