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문장

광주항쟁 (2010년 5월 18일)

divicom 2010. 5. 18. 09:25

"광주항쟁은 제국주의에 근거한 식민지 지배 세력과 민중 세력의 대립구도가 분출된 꼭짓점이었다.

일본의 식민 지배로부터 이어 온 지배 레짐과 피지배 민중과의 갈등이다. 이런 제국-식민 역사는

동아시아의 보편적인 문제이고, 모든 나라들이 일본 제국주의를 겪은 뒤부터 한국과 비슷한 길을

걸어야 했다. 광주항쟁과 5월운동은 한국만의 것이 아니다."

 

"그런데 오직 광주만이 승리의 역사를 세웠다. 패자가 승자가 되는 위대한 패러독스로 군사적으로는

졌지만 정치, 도덕적으로는 승리를 거뒀다. 오랜 투쟁 끝에 진상규명과 명예회복까지 이끌어냈다.

이는 세계적으로도 드문 성공과 승리의 역사다. 광주의 중요성은 여기에 있다."

   --2010년 5월 17일 한겨레신문 9면에 실린 일본 리쓰메이칸대의 서승 교수 인터뷰에서 인용.

 

기사 옆에는 화상의 흔적이 여전한 서 교수의 얼굴 사진이 함께 실려 있습니다. 자연히 서 교수의

아우인 서경식 도쿄케이자이(東京經濟)대학 교수가 형에 대해 쓴 구절이 떠오릅니다. 그의 저서

<시대의 증언자 쁘리모 레비를 찾아서>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1980년 봄, 나의 두 형은 한국에서 9년째 옥중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쿄오또 시내의

병원에서 임종을 눈앞에 둔 어머니를 매일 지키고 있었다. 우리 형제는 모두 일본 쿄오또에서 태어난

재일조선인 2세지만, 형들은 각각 1967년과 1969년에 한국으로 '모국 유학'을 갔다. 식민지 지배

때문에 그 옛날 빼앗긴 자신들의 언어와 문화를 회복하고, 조국의 사람들과 단절된 관계를

회복하려는 의도였다.

 

큰형인 서승은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사회학을, 작은형 서준식은 같은 대학 법학부에서 법을

공부하고 있었는데, 헌법을 개정하면서까지 3선을 노리던 박정희 대통령과 이것을 저지하려는

야당후보 김대중이 맞붙은 1971년 대통령선거 직전에 '학원에 침투하여 박정희의 3선 저지운동을

배후에서 조종한 "북"의 스파이'라는 죄목으로 검거되었다.

 

이 사건의 선동적인 발표는 분명 당시 고양되던 학생운동에 찬물을 끼얹었을 것이다. 큰형은

안면과 상반신에 죽음에 이를 수 있을 정도의 큰 화상을 입고 붕대를 둘둘 감은 비참한 모습으로

법정에 나타났다. 육군 보안사령부에서 조사받던 중에 친구들의 이름을 불라고 고문을 받았는데,

고문에 굴복해 학생운동에 타격을 입힐까봐 틈을 보아 분신자살을 시도했던 것이다. 형식뿐인

재판의 결과, 큰형에게는 무기징역, 작은형에게는 징역 7년이 선고되었다."

 

서 교수 일가가 겪은 고통에 대해 읽다 보면 한국인 혹은 조선인이라는 게 자랑스러운 만큼 부끄럽습니다.

우리와 같은 민족 중에 이렇게 고결한 인품이 있다는 게 자랑스럽고, 그들에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고통과 실망을 안긴 '조국'의 구성원으로서 부끄럽습니다. 서승 교수는 광주항쟁을 돌이켜보며

"세계적으로도 드문 성공과 승리의 역사"라고 치하하지만, 오늘 이 나라의 백성, 특히 젊은이들 중

광주의 진실을 아는 이가 얼마나 될까 생각하면 부끄럽기 짝이 없습니다. 어젯밤부터 비가 내려 달아오른 뺨을 씻어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