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문장

박유천, 홍상수, 김민희(2016년 6월 29일)

divicom 2016. 6. 29. 11:17

배우 박유천 씨의 성폭행 의혹과 영화감독 홍상수 씨와 배우 김민희 씨의 '불륜'이 인터넷을 도배하다시피 합니다. 

이 사건들에 쏠리는 관심은 정당한 것일까요? 살아있는 이성의 소유자라면 의심해봐야 합니다.

마침 한국예술종합학교의 이동연 교수가 이 문제에 관한 글을 썼기에 아래에 옮겨둡니다.

'스캔들을 사소하게 치부해버리고 무관심한 것으로 외면하는 것, 그것이 스캔들을 음모론으로 대체하려는 권력의 의도를 

무력화할 수 있는 정치적 행동이다.'라는 마지막 문장이 이 글의 백미입니다. 

이 글은 오늘 경향신문 '문화비평'에 실렸으며, 원문은 아래 주소에서 볼 수 있습니다.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606282110005&code=990100


[문화비평]스캔들과 음모론

이동연 |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JYJ의 멤버 박유천과 영화감독 홍상수는 지금 남한 스캔들의 중심에 있다. 박유천은 유흥업소 여성들을 화장실에서 성폭행한 혐의로, 홍상수는 배우 김민희와의 불륜으로 말이다. 박유천은 성폭행 혐의로 그간의 깨끗한 이미지에 금이 갔을 뿐 아니라 특이한 성적취향의 소유자로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홍상수는 김민희와 함께 단란한 

가정을 파탄시킨 나쁜 인간으로 대중의 입방아에 오르내리고 있다. 그러나 서로 다른 맥락을 가진 이 두 남자의 스캔들은 정치적 음모론이라는 공통된 외부를 가지고 있다. 박유천과 홍상수 스캔들의 배후에는 정부의 전기 

가스 분야 민영화 정책발표와 김해신공항 발표 논란, 그리고 옥시코리아 대표의 구속영장기각이란 국민적 분노와 갈등을 덮기 위한 정치적 공작과 음모가 숨어있다는 대중들의 강력한 의혹이 꼬리를 물고 있다.

연예계 스캔들과 정치적 음모론 사이의 상관관계는 사실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2800억원 횡령 비리 의혹이 불어질 때 이민호와 수지의 열애설이 터졌고,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의 성접대 스캔들이 무혐의 처분을 받았을 때 이수근과 탁재훈의 도박 사건이 불거져 나왔다. 국가정보원 댓글 의혹이 국민적 관심을 받고 있을 무렵 원빈과 이나영의 열애설이 언론을 뒤덮었으며, 가깝게는 어버이연합의 전경련 배후지원설이 세간의 관심을 끌었을 때 조영남 대작사건이 오버랩됐다.

연예계 스캔들과 정치적 음모론의 상관관계는 비단 한국만의 문제는 아니다. 미국도 오랜 음모론의 전통을 가지고 있다. 마릴린 먼로의 약물과다 복용에 의한 자살 사건에 조직의 내부 비밀이 폭로될 것을 우려해 미국 CIA가 개입했다는 설이 있었다. 2007년에는 이라크전에서 전사한 미국 군인 수가 3000명을 넘어서자 여론의 악화를 우려해 부시 정부가 브리트니 스피어스의 충격적인 사생활을 폭로했다는 음모론도 있다. 연예계의 스캔들과 정치적 음모론은 국적을 떠나 왜 이토록 깊게 연루되어 있을까? <스토리텔링 애니멀>의 저자 조너선 갓셜은 ‘허핑턴포스트’ 2012년 6월21일자 칼럼에서 우리 삶을 지배하는 10가지 이야기 방식 중에서 8번째로 음모론을 언급했다. 그가 말하는 음모론은 창조성이 빛나고 공들여 만든 플롯 같아서, 사람들을 믿게 만드는 허구적인 이야기이다. 음모론은 인간의 상상력을 강력하게 견인하는데, 그 이유는 음모론이 픽션과 비슷한 구조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음모론은 마치 질 좋은 실을 찢어버리는 행위 같은 것으로, 평범한 이야기를 거친 통속적 오락으로 변환시키는 것이다.

조너선 갓셜의 주장대로라면 그 상관관계의 열쇠는 스캔들이 아니라 음모론이 쥐고 있다. 음모론은 의혹을 사실처럼, 일상을 특별한 사건처럼, 평범한 이야기를 통속적 오락처럼 변형시킨다. 음모론은 음모의 대상이 되는 이야기를 아주 특별한 사건으로 전환시킨다는 점에서 ‘스캔들의 스캔들’이다. 사실 스캔들은 사전적 의미로는 “매우 충격적이고 부도덕한 사건. 또는 불명예스러운 평판이나 소문”을 말한다. 스캔들은 그 자체로 충격적이고, 파격적이다. 그런데 대체로 연예인들의 열애설과 일탈행동으로 대변되는 한국에서의 스캔들이 과연 충격적이고 파격적인 것인지는 의문의 여지가 있다. 박유천의 성폭행 혐의는 분명 충격적이다. 그러나 ‘홍상수-김민희’, ‘이민호-수지’의 열애설은 스캔들이라는 사전적 의미에 부합하는 것인지조차 모르겠다.

음모론은 스캔들을 허구적으로 생산한다기보다는 그것을 생산적으로 허구화시킨다. 음모론은 스캔들이 아닌 것을 스캔들처럼 착각하게 만들고, 평범한 이야기를 파격적인 스토리텔링처럼 증폭시킨다. 그런 점에서 스캔들과 음모론은 떨어져 있는 게 아니라 서로 내포하고 있다.모든 연예계 스캔들을 부패한 권력이 인위적으로 조작했다고 믿는 것은 음모론에 대한 또 다른 음모론이다. 물론 연예계 스캔들이 묘하게 정치적으로 민감한 시점에 터져 나온 것이 우연의 일치만은 아닐 수 있다. 정말 대중들의 의혹대로 스캔들의 폭로가 정치적 공작의 결과일 수 있다. 만일 스캔들이 정말로 정치적 공작의 산물이라 하더라도 그것은 어떤 점에서 지배 권력의 자기방어를 위한 수많은 속성 중 하나에 불과하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모든 스캔들을 정치적 공작의 산물로 확신하려는 우리 안의 음모론으로부터 결별하는 것이다. 스캔들을 사소하게 치부해버리고 무관심한 것으로 외면하는 것, 그것이 스캔들을 음모론으로 대체하려는 권력의 의도를 무력화할 수 있는 정치적 행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