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삼 전 대통령이 돌아가신 후 여기저기서 온갖 사람이 그분과의 인연을 들먹이고 '아들'을 자처합니다.
들을 만한 소리, 읽을 만한 말은 거의 없습니다. 그러나 조금 전 인터넷 경향신문에서 본 한완상 초대
통일부총리의 인터뷰 기사는 여야 정치인이나 시민이나 읽어둘 필요가 있습니다. 노추에 익숙해진 눈과 귀를
바른 말로 열어주니까요. 한 전 부총리가 오래 건강하시어 젊은 동행들을 일깨워 주시기를 빕니다.
기사 원문과 한 전 부총리의 사진은 아래 주소에서 볼 수 있습니다.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511242302515&code=910100&nv=stand
ㆍ문민정부 초대 통일부총리 한완상 인터뷰
김영삼(YS) 정부 초대 통일부총리를 지낸 한완상 전 부총리(79)는 “YS는 남북관계가 개선이 안되면 민주적 개혁이 안된다는 것을 몰랐다”며 “김영삼 정부 5년의 어두운 면이 거기에 있다”고 말했다. 한 전 부총리는 지난 23일 서울 압구정동 자택에서 경향신문과의 인터뷰를 통해 “YS는 직관과 여백의 정치인”이라며 이같이 평가했다.
- YS와의 개인적 인연은.
“YS가 야당 총재를 하면서 중요한 연설을 할 때 가끔 연설문을 써달라고 했다. 특히 유신체제를 끌어안고 가자는 이철승씨의 중도통합론과 싸울 때 자주 만났다.”
- 초안을 짠 대통령 취임 연설문에서 표방했던 바는 무엇인가.
“우선 김영삼 정부는 유신군부통치를 확실히 종식하는 문민정부로 자리매김했다. 이름도 몇 공화국이 아니라 ‘김영삼 정부’로 했다. 국가 엘리트가 되려면 재산축적에 문제가 없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게 나중에 금융실명제, 공직자 재산공개로 나온다. 또 역사 왜곡 바로잡기를 문민정부가 하자고 해서 군사쿠데타 주역들과 군부 세력을 법정에 세웠다.”
- 대북정책은 어떤 방향이었나.
“YS는 취임사에서 ‘김일성 주석에게 말합니다. 어느 동맹국도 민족보다 나을 수 없습니다’라고 선언했다. 북쪽에도 남쪽에도 충격을 줬다. 그런데 1993년 3월 (장기수) 리인모씨 북송 다음날 북한이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를 선언했다. 대북정책이 초장부터 태풍 속 편주같이 위태로워졌고 남쪽 냉전 수구세력과 북쪽 강경 군부의 적대적 공생관계가 강화됐다. 남북관계가 개선 안되면 민주적 개혁이 안된다. 남북관계가 악화되는 것을 반기며 그것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사람들이 때문이다. 문제는 YS가 그걸 몰랐다는 점이다.”
- 초기 엄청나던 지지율에 비해 임기 후반 평가가 좋지 않다.
“남북관계가 악화되고 미국과의 관계도 냉·온탕을 왔다 갔다 했지만 대부분 안 좋았다. 하나회 청산의 신선한 바람이나 공직자 재산공개와 금융실명제에서 온 감동이 결국은 동력을 상실하면서 민주개혁 쪽으로 못 갔다. YS도 점점 보수화되다가 결국 1996년 노동법 날치기 통과를 하게 된다. 게다가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벼락까지 맞았다. 그해 말 청와대 들어갔더니 ‘우리 경제의 기초가 튼튼하다고 알고 있었는데 이렇게 거덜날 줄 몰랐다’ ‘하루빨리 청와대에서 나갔으면 좋겠다’고 하더라.”
- YS 정부 5년에 대한 총평은.
“3당 통합 때 YS는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에 들어가야지라고 하더라. 이후 호랑이를 잡아서 법정에 세우기도 했다. 그런데 자기가 법정에 세운 호랑이들이 키운 냉전세력, 언론에 포위되어서 결국 개혁 동력을 잃어버린 게 아쉽다.”
- 김영삼이란 인물 개인에 대해서는 어떻게 평가하나.
“직관력이 대단했다. 박정희 정권을 보면서 ‘닭의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고 했다. 촌철살인이다. 또 YS는 여백의 인간이다. 여백이 많으니, 좋은 사람의 아이디어를 얻어서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소통을 잘한 것이다. 그 여백의 크기는 DJ(김대중 전 대통령)보다 YS가 컸다. 지금 박근혜 대통령은 여백이 하나도 없다.”
- YS를 보여주는 에피소드는.
“YS의 소통능력은 대단하다. 내가 3김 비판 칼럼을 많이 썼다. 김종필 전 총리는 만나면 ‘내가 한 박사 글은 언더라인하면서(밑줄을 그으면서) 읽습니다’라며 얼굴을 들기 어렵게 만든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악수하다가 손을 꽉 잡으면 뿌리치고 간다. YS는 어깨를 껴안으면서 귓속말로 ‘어이, 한 박사 나 좀 봐줘’ 이런다.”- 여당은 YS 계승을 말한다.
“여당은 YS가 한국정치사에 그어놓은 민주화 여정의 업적으로 돌아가야 한다. 김무성 대표와 서청원 최고위원이 친박이냐 아니냐로 다투는 것을 보면, 어떻게 위대한 민주투사 밑에서 저런 제자가 나올 수 있는가 싶다. 제발 정치적 아들이니 이런 소리 안 했으면 좋겠다. 지금 여당의 주요 정치인들은 내가 보기에 YS가 가열하게 싸웠던 대상인 중도통합론자들이다.”
- 야당에 YS가 주는 교훈은.“역사가 체계적으로 후퇴하는 이런 조건에서 무슨 밥그릇 싸움인가. 문재인 대표는 YS가 어떻게 박정희 정권과 대치해 국회의원 제명까지 당하면서 역사 후퇴를 막으려 싸웠는지를 벤치마킹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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