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문장

아베 총리가 미 의회 연설하는 날(2015년 4월 2일)

divicom 2015. 4. 2. 08:50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4월 29일 미국 상원과 하원 합동회의에서 일본 총리로는 처음으로 연설합니다. 제가 존경하는 선배 언론인 황경춘 선생님이 오늘 아침 자유칼럼에 그날이 어떤 날인지 알려주는 글을 쓰셨기에 옮겨둡니다. 

아흔을 넘기신 연세에도 여전히 좋은 글로 후학들을 도우시는 선생님께 늘 감사드립니다. 선생님, 오래 건강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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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왕 생일의 아베 미 상ㆍ하원 연설

2015.04.02


1930년대에 일본이 중국대륙 침공을 시작하고, 끝내는 태평양전쟁으로 일본을 패전으로 몰아 간 쇼와(昭和)천황의 생일이 4월 29일입니다. 전전(戰前)에는 ‘천장절(天長節)’이라 하여 이날은 일본 최대의 국경일이었습니다. 1945년의 패전으로 새로 탄생한 일본 정부는 1948년 이 ‘천장절’이란 명칭은 없앴으나, 이날을 공휴일로 남겨 그의 사후인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이달 하순에 바락 오바마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을 위해 미국을 방문하여, 4월 29일 상하 양원 합동회의에서, 일본 총리 최초로 연설을 합니다. 기막힌 우연입니다. 양국이 이날에 맞춰 아베의 연설 일정을 결정했다고는 믿지 않습니다. 그러나, 당사자인 아베 총리로서는 절대 이날을 잊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금년이 일본 패전 70년이고, 한ㆍ일 국교 정상화 50년이 되는 해입니다. 그래서, 한국은 물론이고 온 세계가 아베의 미국의회 연설 내용에 관심을 쏟고 있습니다. 그의 역사 수정주의적 견해가, 국내외로 많은 비판을 받아왔기 때문에 더욱 그렇습니다.

2006년 9월에 아베가 총리로 처음 임명되었을 때, 1954년생인 그는 일본 최연소 총리인 데다, 최초의 전후 태생 총리라고 각광을 받았습니다. ‘무라야마 담화’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1995년에 취임한 무라야마 도미이치(村山富市) 총리는 1924년생으로 일본의 좋은 시절‘다이쇼(大正)데모크라시’출생 마지막 총리입니다. 그는 학도병으로 군대 생활도 경험했습니다.

그 뒤 총리는 비록 쇼와 태생이기는 하지만, 군벌 정부가 수행하는 전쟁의 아픔을 어릴 적에 조금이라도 경험하였습니다. 그에 비해, 아베는 일본의 전시 참상을 전혀 경험하지 않은 첫 총리였습니다. 다른 역대 총리처럼, 옛 일본군 생활을 경험하거나, 모자라는 물자로 고생하거나, 공습을 피해 부모와 떨어져 지방으로 피란 간 초등학생의 소개(疏開)도 모르고 컸습니다. 다만, 그의 외할아버지 기시 노부스케(岸信介)가 전시내각의 각료로 패전 후 A급 전범으로 기소되어 재판을 받았다는 게, 거의 유일한 전쟁의 기억입니다.

그가 건강상 이유로 일 년 만에 그만두었다가, 자민당의 선거 대승으로 두 번째로 총리에 취임한 2012년 후, 일본정계에는 많은 세대교체가 있었습니다. 그의 내각은 물론이고, 여당인 자민당과 국회도 크게 젊어졌습니다. 

그와 동시에, ‘아름다운 일본의 재현’또는 ‘전후 체제의 탈피’라는 구호로 출범한 아베 총리의 수구ㆍ보수적 정치이념이 이웃 나라들과의 관계에 큰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아베의 2차 집권 이래, 한국과 중국과의 정상회담이 아직 실현되지 않고 있습니다.

일부 극우ㆍ국수주의자(國粹主義者)들에 의한 민족차별주의적인 혐한(嫌韓) 운동으로, 한때 일본국민의 60% 정도가 한국을 우호적으로 대하다가, 지금은 이 비율이 30%대로 떨어지고, 반사적으로 우리 대일 감정도 이 이하로 떨어졌습니다.

아베는 침략과 식민지 지배를 미화하고, 이에 동조하는 보수 세력은 일본 통치가 한국 근대화에 기여했다는 발언까지 서슴지 않습니다. 재특회(재일 특권을 반대하는 시민 모임)를 중심으로 하는 시위대는 ‘한국을 근대국가로 만들어 미안합니다’라는 플래카드까지 흔듭니다.

‘네토우요(넷 우익)’라고 불리는 이 극렬분자들은 약 120만 명으로 추산되는데,  SNS를 통한 혐한운동 등으로 영향력을 키워가고 있습니다.  그들의 욕설 섞인 비난을 피해 많은 친한 정치인이나 사회인사가 몸을 도사립니다. 아베 총리 부인 아키에(昭惠) 여사는 친한 인사로 한국말도 잘합니다. 그 때문인지, 네토우요에서는 가끔 아베 총리까지도 ‘국적(國賊)’이라 부르고 ‘조선인’이라고 욕합니다. 일본 사회에서는 지금 ‘조선인’이라 낙인(烙印)찍히는 유명 한인 2세나 귀화 한인이 많습니다.

자기의 정치 기반에 대한 배려와 국내법의 미비로, 이들의 과격한 국가주의적 행동에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못하고 정책면에서 독주 태세를 고집하는 아베 정권은, 지금 큰 고비를 맞고 있습니다. 아베 반대 대규모 시위가 국회의사당이나 총리 관저 주변에서 자주 일어나고, 지식인을 중심으로 한 시민운동이 패전 70년을 맞은 금년에 크게 태동하고 있습니다.

물론, 자민당과 연립 여당 공명당이 국회에서 절대안정 의석을 가진 아베 총리의 정치생명은 앞으로 4년은 보장되어 있습니다. 지난 1월 아베 총리의 중동 순방 중에 일어난 이슬람 과격파 IS에 의한 일본인 인질 2명 살해문제에 대한 미숙한 대처로 내각에 대한 비판이 일게 되었고 더불어 아베 총리의 철학의 빈곤과 그의 건강까지도 걱정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아베 총리는 1월 하순의 중동 순방에 이어, 스위스의 다보스 경제회의에도 참석할 예정이었으나, 인질 사건 이후 갑자기 귀국하였습니다. 일부에서는 이 귀국이 총리의 건강 때문이라고 보도했습니다. 그는 1차 내각 하야 때, 지병인 궤양성 대장염 때문이라고 발표했었습니다. 그 뒤, 이병은 완치했다고 했지만, 최근에 그의 주치의가 암 전문의로 바뀌면서, 그의 건강에 대한 추측들이 다시 나오기 시작하였습니다. 

아베 총리의 위안부 문제에 대한 강경한 태도가 한일관계를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습니다. 공영방송 NHK 위안부 프로 편성에 개입했다는 2005년 아사히(朝日)신문 보도에 사과를 요구하고 고소까지 한 이후, 아사히와의 비우호적 관계가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습니다. 

최근 전 총리 이홍구(李洪九), 전 국회의장 김수한(金守漢) 등 여러분이 도쿄를 방문하여 일본 전 총리 모리 요시로(森喜朗) 등 인사와 한일우호를 돕기 위한 ‘현인(賢人)의 모임’을 조직했습니다. 아베 선친의 도움으로 정계에 입문한 모리 전 총리는 최근 폐암 수술을 받았으나 지금도 2020년 도쿄 올림픽 조직위원장을 맡는 등 아베 주변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자민당 ‘킹메이커’라 불렸던 그도, 아베의 독주적 정치행보에 제대로 제동을 걸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베의 역사관이나 위안부 문제 발언에 미국 관리들도 신경을 쓰고 있습니다. 교과서 기술이나 위안부 여인상 건립을 반대하는 일본 로비에 따끔한 충고도 했습니다. 방미를 앞두고, 아베 총리는 워싱턴포스트 등 외국 매체와의 인터뷰를 통해, 그의 정치 소신을 약간 후퇴시켜 애매하게 전달하여, 4월 29일의 미국 의회 연설에 더욱 관심을 갖게 만들었습니다. 싱가포르 리콴유 전 총리 국장에서, 그는 박근혜 대통령에 다가와 환담을 나누기도 하였습니다.

올해 8ㆍ15 기념일에 낼 예정인 ‘아베 담화’의 내용을 가늠하는 데에도 큰 도움이 될 이번 미국 의회 연설이, 아베 정권하의 일본의 국제사회 역할을 가늠할 시금석이 될 것입니다. 

필자소개

황경춘

일본 주오(中央)대 법과 중퇴
AP통신 서울지국 특파원, 지국장 역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