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문장

호랑이는 죄가 없다(2013년 11월 27일)

divicom 2013. 11. 27. 09:10

지금 이 나라 일각에서는 사람을 공격한 호랑이를 죽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여우사에 갇혀 있던 호랑이가 열린 문으로 나가다가 사육사를 물었는데, ‘맹수가 사람을 공격했으니 사형에 처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입니다.

 

호랑이의 사형을 주장하는 사람들도 호랑이가 맹수라는 건 인정합니다. 그러면서 맹수에게 사람에게나 적용할 복수를 적용하는 겁니다. 더구나 이번 일은 사람들이 잘못하여 호랑이에게 공격 구실을 제공했다는 게 분명해지고 있습니다.

 

JTBC가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는 관리부실로 일어난 사건이니 호랑이를 살려두어야 한다는 의견이 70.2퍼센트, ‘재발 방지를 위해 호랑이를 죽여야 한다는 의견이 27.6퍼센트였다고 합니다. 그 호랑이를 죽이면 이런 사고의 재발을 방지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다는 게 참 놀랍습니다.

 

호랑이의 공격을 받고 의식 불명 상태에 빠진 사육사, 그분조차 호랑이를 죽이는 건 반대할 겁니다. 호랑이는 맹수입니다. 그는 맹수답게 행동했으니 그에겐 죄가 없습니다. 죄가 있다면 그건 사육사들을 비롯한 실무자들이 호랑이를 여우사에 넣으면 안 된다고 반대하는데도 넣게 한 누군가에게 있겠지요. 책임은 호랑이가 아닌 바로 그 사람()에게 묻고 벌도 그 사람()에게 주어야 합니다. 아래는 어제 경향신문에 실린 관련 기사입니다.

 


전문가들 안전관리 부실 탓안락사 안돼

대공원 격리 후 재공개한 독일 사례 검토

 

서울대공원이 지난 24일 사육사를 공격한 시베리아호랑이 로스토프(3)의 처리 방안을 놓고 고민에 빠졌다. 사람을 공격한 맹수에 관한 처분 규정이 없기 때문이다.

 

맹수가 사람을 공격하면 현장에서 바로 사살할 수 있다. 그러나 로스토프는 사육사를 공격한 뒤 스스로 방사장에 돌아갔다. 대공원 측은 25일 호랑이숲 리모델링 공사가 끝나는 대로 호랑이사로 옮길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달주 동물복지과장은 상황이 애매해서 외국 사례를 검토 중이라면서 비슷한 일이 있던 독일에선 격리 후 다시 공개를 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고를 인재로 간주하고 있다. 이항 서울대 수의학과 교수는 동물원이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어떤 호랑이든 사람과 맞닥뜨리면 공격을 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러시아 연구자들에 따르면 지난 수십년간 야생에서 시베리아호랑이가 사람을 공격한 일이 1~2건 정도라면서 호랑이들은 사람을 극도로 꺼린다고 말했다. 새끼가 있거나, 사람과 갑작스럽게 맞닥뜨릴 경우에만 공격한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로스토프가 탐색 본능 때문에 열려 있는 문으로 나가다 사육사를 보고 놀라서 순간적으로 공격했을 가능성이 있다이번 사고는 관리 부실 때문에 벌어진 일로 호랑이가 사람을 공격했으니 죽여야 한다고 말하면 본질을 잘못 짚은 것이라고 말했다.

 

김지영 동물자유연대 활동가는 미국, 영국 등 동물원법이 있는 나라의 사례를 살펴보면 사람을 공격했다고 해서 안락사를 시킨 경우가 없다고 말했다. 그는 사고 대응 절차와 문제 동물을 처리하는 기준 등이 담긴 동물원법을 만들어야 앞으로 이러한 사고를 막을 수 있다고 말했다.

 

안영노 서울대공원장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대공원의 미숙한 안전관리를 인정했다. 사육사들은 규정상 서로를 확인할 수 있는 위치에서 21조로 움직여야 하는데 당시 사육사 한 명은 100m가량 떨어진 퓨마사로 향했다.

 

안전 매뉴얼도 제대로 없다. 서울대공원은 위험한 맹수를 사육하면서도 업무 전문 교육을 실시하지 않았고, 직무 교육은 3년차 이내 직원에 대해서만 실시하고 있다. 호랑이에게 공격당한 사육사 심모씨는 곤충 관련 박사학위 소지자로 1987년부터 곤충관에서 일해오다 올해 1월 호랑이사로 옮겼다.

 

여우사를 임시 호랑이사로 개조하면서 시설 안전 대책도 미흡했다. 호랑이사에 있는 도랑은 없었다. 관람객 통로 입구 펜스 높이는 1.41m에 불과했으며, 폐쇄회로(CC)TV도 없었다. 대공원 측은 이날 안전 장비 확보, 안전 매뉴얼 정비, 시설 보강 등 대책을 발표했다. 사육사 심씨는 어제 오후 수원 아주대병원으로 옮겨져 치료 중이지만 의식불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