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엔 ‘빨간약’이 만병통치약이었습니다. 동네 아이들이 놀다 넘어지면 얼른 집으로 달려가 ‘빨간약’을 가져다 발라주었습니다. 일찍부터 허리가 아프셨던 아버지는 허리를 주무르는 세 딸의 손 중에서 제 손이 제일 시원하다고 하셨습니다. 그런 까닭이었을까요? 공부보다 책 읽기를 좋아하던 제가 고3이 되자 아버지는 의대를 가라고 하셨습니다. 저도 의사가 되고 싶었습니다. ‘사람을 살리는 일’보다 더 좋은 직업은 없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집안 형편이 형편인지라 국립대에 가야 했지만 제 성적으로는 언감생심 꿈도 꿀 수 없었습니다. 게다가 당시 서울대학교는 전 과목 시험을 치르게 했는데 제가 다닌 고등학교는 전 과목이 아닌 선택 과목을 가르쳤습니다. 그래도 시험은 보고 싶었습니다. 시험을 치지 않은 걸 두고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