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나 새달에 들어설 때면 대개 '더 열심히 00해야겠다'는
각오들을 다지는데, 저는 오히려 반대입니다.
구월은 계단을 한 번에 몇 개씩 오르듯 살았지만
시월엔 좀 게을러져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구월 끝자락에 몸살이 나서 며칠 누워 있으려니
참으로 부끄러웠습니다.
'어리석은 사람아, 최소한 나잇값은 해야 하지 않겠는가?'
오랜만에 좋아하는 카페에 갔더니 테이블에 쌓인 책 중
한 권이 자꾸 말을 걸었습니다.
<게으름에 대한 찬양 (In Praise of Idleness)>.
20세기 최고의 철학자로 일컬어지는 버트란드 러셀
(Bertrand Russell: 1872-1970)의 책입니다.
못 마시던 커피를 마시게 된 것만 해도 즐거운데
친구 같은 책을 만나 '게으름을 찬양'하는 소리를 들으니
절로 미소가 지어졌습니다. 게으름에 관한 구절은
마음에 담고, 작은 노트엔 아래 구절을 적었습니다.
p. 48
행동보다 사고에서 기쁨을 찾아내는 습관은 어리석음을 막아주고
과도하게 힘을 추종하는 현상을 방지하는 보호막이며 불행할 때 평온을,
근심에 싸였을 때 마음의 평화를 유지시켜 주는 수단이다.
개인적인 것에만 한정된 생활은 언젠가는 견디기 어려울 만큼 고통스러운 것이
될 것이다. 보다 큰 우주를 향해 마음의 창을 활짝 열어야 인생의 비극적 단면을
이겨나갈 수 있다.
p. 49
진기한 지식은 불쾌한 일을 덜 불쾌하게 만들 뿐 아니라 즐거운 일을
더 즐겁게 만들어 준다.
-------- <게으름에 대한 찬양>, 사회평론, 송은경 번역.
'오늘의 문장'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전혜린: 그리고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2021년 10월 16일) (0) | 2021.10.16 |
---|---|
경험, 반항. 죽음 (2021년 10월 4일) (0) | 2021.10.04 |
추석달, 천고마비, 오곡백과 (2021년 9월 22일) (0) | 2021.09.22 |
'자연인' (2021년 8월 29일) (0) | 2021.08.29 |
어느 날의 독서 일기 (2021년 8월 22일) (0) | 2021.08.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