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친구 중에 광주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고
광주에서 살거나 자주 드나든 것도 아닌데
광주를 생각하면 슬프고 괴롭습니다.
생각이 그대로 고통이 되어 몸을 주저앉히니
가능하면 생각을 하지 말자 하지만
5월, 특히 5월 17일부터는
광주를 생각하지 않을 도리가 없습니다.
그리고 그 생각은 늘 깊은 슬픔과
거대한 분노로 이어집니다.
광주의 의거와 무수한 희생자들을 기리며
광주가 낳은 시인의 시를 읽습니다.
이성부(1942-2012) 선배님, 어디쯤에 계신가요,
그곳은 이곳보다 나은가요?
자연
한줌 흙을 쥐고 처음인 듯 들여다본다.
흙은 마지막 남은 틀려버린 일을 끝내고
다시 시작할 수 없다는 냄새를 낸다.
썩음의 목마른 소리를,
무너진 아름다움을 들내어 보여준다.
흙은 또 금방 생활을 토해낼 것 같은 창백한 빛,
나는 너무 놀라서 다른 흙을 쥐어보고
또 다른 흙을 쥐어보며 소리쳤다.
이처럼 하얗게 질려 있는 것은
얼마나 많은 슬픔과의 입맞춤 때문이냐!
말없는 땅의 한줌 흙은
이미 너무나 강력한 패배에 길들고 말았다.
세계의 씩씩한 사람들은 오고 있지만
흙은 늦었어 너무너무 늦고 말았어.
--이성부 시선 <우리들의 양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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