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행

아무 것도 되지 않으려는 사람(2019년 11월 7일)

divicom 2019. 11. 7. 16:24

또 왼쪽 눈이 고장났습니다.

제 경우엔 일이 곧 책을 보거나 글을 쓰는 행위이다 보니 눈이 고장나면 일을 쉬거나

줄일 수밖에 없습니다.


콘택트렌즈를 끼어야 시력이 좀 나오는데 렌즈를 끼지 못하니 몇 번 압축한 고도근시용 안경을 끼고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산책을 합니다. 안경을 끼면 잘 보이지 않을 뿐만 아니라 머리가 아플 때도 있습니다.

고도근시 탓인지 난시 때문인지 알 수는 없습니다.


한편으로는 다행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직장에 매어 있지 않아 남에게 피해를 주거나 일에 지장을 주진 않으니까요.

제게 일을 해달라고 하는 사람들은 거의 다 만나지 않고 연락을 주고받으니 그 또한 다행입니다.


소위 '프리랜서'로 살아서 좋은 점은 시간을 자유롭게 운용할 수 있다는 것이지만

제 개인적 문제가 그대로 남의 문제로 이어지는 걸 피할 수 있다는 것도 큰 장점입니다.


세상에서 인정받는 것을 목표로 하는 사람들은 제게 왜 그렇게 사느냐고 합니다.

기자 생활을 비롯해 사회생활을 꽤 했으니 그걸 바탕으로 번듯한 자리에 나아가지

왜 집안에 들어앉아 '아무 것도 아닌 사람'으로 사느냐는 것이지요.


번듯한 자리에 나아갈 능력이 있는가는 차치하고, 그것은 제가 원하는 삶이 아닙니다. 

저는 반경 1, 2 킬로미터 이내에 머물며 조용히 제 안팎의 풍경을 보는 것으로 충분하니까요.

지금 이렇게 사는 것이 내가 원하는 삶이라고 해도 믿지 않으려 하는 사람이 많은데

친구들 중에도 그런 사람들이 있으니 안타깝습니다.


그들이 '사람은 다 다르다'는 것을 인정했으면 좋겠습니다.

장관이나 국회의원을 하고 싶어하는 사람이 있고, 부자가 되고 싶어 하는 사람도 있지만

어떤 사람들은 장관이든 부자든 아무 것도 되고 싶어하지 않는다는 것을 받아들였으면 좋겠습니다.

며칠 전 신문에서 비슷한 생각을 읽었기에 아래에 옮겨둡니다.



임의진의 시골편지]자유인

임의진 목사·시인

수능이 다가오는지 아침저녁 쌀쌀함이 배나 더하다. 밤새 내린 이슬로 아침 마당이 촉촉하다. 뽀글이 점퍼를 하나 가지고 있는데 만날 찾아 입게 된다. 아이들아! 대학에 합격하려면 ‘재수 없는 꿈’을 꾸면 된단다. 대학에 가지 않아도 자유롭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기회야 또 많단다.

입시 공부를 하는 것도 아닌데, 야무지게 책상에 달라붙어 책을 읽곤 한다. 그러다보면 하루가 금세 휙 지나가.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니깐. 가르치는 일보다 배우는 일이 훨씬 즐겁다. 매주 설교를 하는 목사가 아니라서 마음이 편하고 홀가분하다. 입으로 뱉은 말처럼 살기가 얼마나 어려운가. 자유란 그래 말을 앞세우지 않고 몸으로 먼저 살 때 차오르는 기쁨이 맞다. “울안의 닭은 배불러도 솥 안에 삶아지고, 들판의 학은 배고파도 천지가 자유롭다.” 지공 선사의 시를 가슴에 새긴다.

남들보다 프로필이 장황한 편인데, 한마디로 줄이면 자유인. 사실 아무것도 되지 않고자 싸워왔는데, 그만 이력이 늘었다. 인도의 현자 크리슈나무르티는 말했다. “자유인은 사실 사제복이나 사타구니쯤 가리는 남루한 옷을 입거나 하루 한 끼 식사하는 이러이러한 인간이 되고 저러저러한 인간은 되지 않겠다고 무수히 선서를 한 그런 사람이 아니다. 내적으로 단순하며 ‘아무것도 안되려는 사람’이다. 그런 이성은 장애물이 없고 두려움이 없으며 무엇을 향한 전진이 없기 때문에 놀라운 수용력을 지닌다. 이로써 은총과 하느님과 진리, 원하는 모든 것을 지닐 능력을 가지게 된다.”

아무것도 안되려는 사람, 자유인들이 있어 예술도 있고 종교도 불을 밝힌다. 선생님이 장래 희망을 묻자 과학자, 장사꾼 쏟아지는데 한 여자아이가 말했어. “결혼해서 애 낳고 소박하게 살 거예요.” 그러자 옆에 있던 남자아이가 바통을 이어받았다. “그럼 저는 이 친구가 애 낳는 데 협조하면서 소박하게 살래요.” 힛, 그리 살아도 뭐 둘이 좋다면야. 우리 사회는 이제 이 소박한 꿈도 꾸기 힘든 비혼과 저출산의 시대로 접어들었다. 그렇다고 대범한 자유인들이 눈에 띄지도 않는다. 닭장에 갇혀 와글다글 살다가 솥 안에 삶아지기 일보 직전.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910302048015&code=990100#csidx1a2eedbc9acee5abbee1735d1c65e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