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문장

공공기관의 고용 세습 (2013년 10월 7일)

divicom 2013. 10. 7. 17:58

오늘 아침 자유칼럼에서 보내준 글이 아주 중요한 주제를 다루고 있어 여기 옮겨 둡니다. 

저는 이 글의 필자인 김수종 선배의 불편부당함을 존경합니다. 이 글을 읽어 보시면 대개 

제 의견에 동의하시리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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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기관의 고용세습

2013.10.07


신문 기사를 읽다가 우리나라 공기업 노동조합이 대통령보다도 훨씬 센 게 아닌가 하는 착각에 잠시 빠졌습니다. 
국회 이노근(새누리당) 의원이 공공기관 경영정보시스템인 ‘알리오’ 홈페이지에 단체협약서를 공개한 179개 공공기관을 분석한 결과, 33개 공공기관이 노사단체협약에 가족 우선 채용조항을 두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 이를 언론에 공개한 것입니다. 

단체협약에 규정된 직원 가족 우선 채용 조항을 보면, 업무상 직원이 사망한 경우 그 배우자나 자녀에게 혜택을 주도록 한 곳이 13개 공공기관입니다. 그러나 업무 이외에 개인적인 이유로 사망한 경우나 심지어 정년퇴직한 경우에 그 가족을 채용할 수 있도록 규정한 단체협약을 가진 공공기관도 20곳이나 됩니다. 이런 단체협약 조항에 의거해서 직원의 배우자나 자녀가 채용된 사례가 최근 8건이 된다고 이노근 의원은 밝혔습니다.

이 의원이 조사한 공공기관은 단체협약서를 ‘알리오’에 공개한 179개 기관입니다. 전국의 공공기관은 295 곳입니다. 나머지 116개 공공기관은 단체협약을 공개하지 않았기 때문에 어떤 조항을 갖고 있는지 알 수 없지만, 같은 공공기관이라는 점에서 추세는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공공기관에서 가족이나 친인척을 보아주기 위해 채용정보를 챙겨주거나, 채용면접 등에서 유리하게 만드는 경우는 상정해볼 수 있지만, 노사단체협약에 이렇게 채용조건으로 못박고 있다는 사실을 듣고는 적이 놀라웠습니다. 

개별 기업 차원에서 생각하면 이해할 만한 측면이 있습니다. 직장에서 같이 일하던 동료가 불의의 사고로 사망했을 때 유가족은 생계가 막막할 것입니다. 노동조합원들로서는 동료의 불운을 감싸주어야 한다는 동료애와 의무감이 생길 것이고, 공공기관 경영진 또한 유가족의 생계를 도와야 하는 게 아니냐는 도덕적 의무를 느낄 것입니다.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식의 해법이 바로 가족 우선채용 조건의 단체협약입니다. 

이것은 인정의 측면에서는 미덕처럼 보입니다. 고용 상황이 팍팍하지 않던 과거에 회사를 위해 일하다 목숨을 바친 직원에게 회사가 보상하는 방법으로서 용인될 수 있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지금은 사회가 달라졌습니다. 9급 공무원 2천여 명 뽑는데 20만 명 이상의 대졸 지원자가 몰리는 취업전쟁의 시대입니다. 공공기관에 취업하려는 취업준비생들이 몇 년씩 학원에 돈을 쏟으며 수강하는 상황입니다. 시대적으로도 공(公)과 사(私)를 구별해야 할 때입니다. 

공공기관의 방만한 경영은 정권을 초월하여 이어져 왔음이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습니다. 정치적 줄을 타고 낙하산으로 내려온 최고경영자와 이를 꼬투리 잡아 유리한 협상을 하려는 노동조합이 적절한 타협점을 찾으면서 단체협약이 법정신이나 공공의 상식을 초월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은 공공연히 알려진 사실입니다. 이제 이런 비상식을 바로잡을 때입니다.

고용 세습이라면 사기업인 현대차 유족 소송에서 나온 법원판결이 사회적 상식을 대변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현대차 노사의 단체협약에는 '직원이 업무상 사망하거나 6급 이상의 장해를 입고 퇴직하는 경우 직계가족 또는 배우자 중 1명을 특별 채용한다.'고 규정되어 있습니다. 폐암(업무상 재해)으로 사망한 현대차 근로자의 유족이 이 단체협약을 근거로 "자녀를 특별 채용해 달라."고 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케이스가 있습니다. 

지난 5월 선고 공판에서 울산지법은 "업무상 재해에 대해 금전 보상 외에 일자리를 대물림하는 단체협약 조항은 기업의 인사권을 본질적으로 침해하고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 질서'에 반해 무효"라고 판결했습니다. 재판부는 여기다 덧붙였습니다. 
"근로자가 업무상 사망한 경우 유족의 생계 보장은 금전으로 이뤄지는 것이 원칙이며 고용은 사용자의 인사권에 속하는 것이므로 단체교섭 대상이 될 수 없다."
"대를 이어 일자리를 보장하는 방식은 자기들만의 비밀의 오솔길을 만들어 수많은 구직 희망자를 좌절시키는 행위로 청년 일자리가 귀한 요즘, 이동과 상승을 위한 사다리가 있다는 희망은 사회 동력의 근간이므로 그 신뢰를 해치는 것이 제도적으로 허용돼서는 안 된다."

이 판결 이후의 소송 상황은 잘 모르겠지만 시대상을 잘 반영한 판결이라고 봅니다. 공공기관의 ‘고용 세습’을 용인한 단체협약 조항은 이제 고쳐야 할 때입니다. 

필자소개

김수종

한국일보에서 30년간 기자 생활. 환경과 지방 등에 대한 글을 즐겨 씀.
저서로 '0.6도' '다음의 도전적인 실험' 등 3권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