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행

박영숙 선생 별세(2013년 5월 17일)

divicom 2013. 5. 17. 12:08

어제 시내의 길들이 하도 막히기에 웬일인가 했더니 '황금 연휴' 때문이었습니다. 오늘 '석가탄신일'부터 3일 연휴가 시작되어 서울을 떠나는 차가 많았다는 겁니다. 이제 막 인터넷에서 박영숙 선생이 타계하셨다는 소식을 접하니, 사람들이 놀러 나가느라 바쁘던 어제 선생님은 저곳으로 걸음을 재촉하셨나 봅니다.


어느 날이나 그렇지만 누군가가 태어나는 날이 누군가에겐 떠나는 날입니다. 그렇게 태어나고 죽는 사람들로 이루어진 것이 사회이고, 그런 존재들이 만드는 것이 세상입니다. 누군가에겐 살 만 한 것이 인생이고 누군가에겐 살지 않았으면, 태어나지 않았으면 좋은 것이 인생이지만, 하늘은 말없이 그 모든 인생을 지켜 봅니다.


작년인가 재작년인가 친구를 따라 갔던 여성재단 행사에서 선생을 뵈었을 때만 해도 꼿꼿이 우아하셨는데... 암이란 놈이 원망스럽습니다. 선생님처럼 우아한 분들에겐 날로 천박해가는 세상이 큰 짐이고 괴로움이겠지만 그래도 '진흙 속 연꽃' 같은 그분들 덕에 간신히 살고 있는 사람들도 많은데...


선생은 1932년 평양에서 태어나시어 전남여고와 이화여대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한 뒤 YWCA연합회 총무, 여성단체협의회 사무처장한국여성단체연합 부회장을 지내시고, 평민당 부총재로 정계에 입문, 1988년 제13대 국회의원 당선, 평민당 총재 권한대행민주당 최고위원을 역임하신 후, 한국환경사회정책연구소 소장사랑의친구들 총재한국여성재단 이사장과 고문 등 수많은 직책을 맡아 사회에 기여하셨습니다. 작년 초 안철수재단 이사장으로 선임됐지만 암 투병 탓에 사임하셨습니다.


평양이 고향이신 선생이니 누구보다 통일을 기다리셨을 텐데 통일은커녕 남북관계가 나빠진 상태에 있을 때 돌아가시어 가슴이 아픕니다. 공(公)적인 일과 사(私)적인 일의 교집합이 바로 '삶'임을 생각할 때, 선생의 81년은 '공'에 치우친 시간이었을 겁니다. 공적 가치를 위해 헌신하느라 사적 휴식이 부족하셨을 선생님, 부디 편히 쉬소서. 저희와 동행해 주신 시간... 머리 숙여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