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필을 깎습니다. 선물 받은 연필의 겉옷은 잉크 빛인데 그 옷을 벗기니 흰색과 빨간 색 속옷이 드러납니다. 그 속옷 아래엔 나무 속살이 있고, 그 속살은 검은 심을 싸고 있습니다. 심이 쓱쓱 미끄러지며 글자가 태어납니다, 시 시 시... 글 글 글... 연필을 깎을 때면 늘 같은 꿈을 꿉니다. 누군가를 위로하는 시를 쓰고 싶다, 누군가를 살리는 글을 쓰고 싶다... 그러나 그 꿈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아 저는 여전히 같은 꿈을 꿉니다. 아마도 그 꿈은 제가 이곳을 떠날 때까지도 이루어지지 않겠지요. 그리고 그 이루어지지 않는 꿈 덕에 저는 계속 연필을 깎을 겁니다. 시시때때로 ‘너는 왜 그렇게 사니?’ 핀잔을 들을 거고 저는 유쾌할 겁니다. 이룰 수 없는 꿈을 꾸는 건 매일 절망과 마주서는 일이지만 바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