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춘인 3일 밤 옥상에서 펑펑 내리는 눈을 맞으며 눈사람을 만들어 집으로 안고 왔습니다. 눈사람을 만들며 눈사람의 생애가 사람의 생애와 다르지 않구나 생각했습니다. 처음엔 잘 뭉쳐지지 않았지만 계속 만지니 쉽게 부서지지 않는 작은 덩어리가 되었고, 일단 덩어리가 되니 그 다음에 키우기는 별로 어렵지 않았습니다. 베란다의 둥근 화분 받침을 기단 삼아 눈사람을 앉히고 활짝 피었다 시든 후 돌돌 말려 떨어진 덴마크 무궁화 꽃잎으로 눈썹을 만들고, 조그만 돌로 눈을, 귤 껍질로 코를 만들었습니다. 눈사람은 나면서부터 묵언 중이니 입은 필요할 것 같지 않았는데 코 아래 자연스레 주름이 생겨 입처럼 보였습니다. 그렇게 계속 제라늄 옆에서 천리향 향기를 맡을 것 같더니 어느 순간 눈사람이 앉은 자리에 그대로 누웠습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