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는 어네스트 헤밍웨이 (Ernest Hemingway: 1899-1961)를
좋아했습니다. 장식적이지 않은 문체가 좋고 작품 속에 녹아 있는
무수한 경험이 존경스러웠습니다.
그러다 언제부턴가 그의 작품에 넘쳐흐르는 남성성을 감당하기
힘들어졌습니다. 좋아했던 소설들을 읽을 수 없었습니다.
저는 졸저 <우먼에서 휴먼으로>에서 남자든 여자든
적어도 갱년기 즈음부터는 성적 이분법(man, woman식 구분)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인간이 되어야 한다고 썼는데, 헤밍웨이는 죽을 때까지
소위 '상남자'였습니다.
이제 제가 읽을 수 있는 헤밍웨이의 작품은 <노인과 바다
(The Old Man and the Sea)>뿐입니다. 이 작품에도 헤밍웨이의
'상남자' 기질이 남아 있지만 젊어서 쓴 작품들만큼 심하진
않습니다.
이 중편소설은 그가 만 52세이던 1951년에 쓴 것입니다.
시대에 따라 인간의 성숙도가 달라짐을 생각하면 그때의 그는
요즘의 일흔쯤 될 것입니다.
이 소설에 나오는 늙은 어부 얘기를 읽다 보면 가끔 눈이 젖습니다.
조금 아픈 사람은 '여기가 아프다' '저기가 아프다' 말하지만
죽음을 코앞에 둔 사람은 어디가 아프다고 말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통증이 너무 커서 '아프다'는 말이 새어나가지 못하는 건지도 모릅니다.
<노인과 바다>는 통째로 아픈 사람 같은 작품입니다.
꼭집어서 이 문장이 슬프다고 할 수는 없지만 읽다 보면 눈이 젖습니다.
1973년 대학 일학년 때 만난 펭귄북스의 <The Old Man and the Sea>는
누렇고 바랜데다 자꾸 한 장씩 떨어져 테이프로 붙여가며 읽습니다.
가끔 궁금합니다. 그때의 저도 이 책을 읽다가 눈이 젖곤 했는지...
p. 40
No one should be alone in their old age, he thought. But it is unavoidable.
(늙은이는 혼자 있으면 안돼. 그러나 그건 피할 수 없는 일이야.)
p. 93
But man is not made for defeat, he said. ‘A man can be destroyed but not defeated.’
(인간은 패배하기 위해 만들어진 게 아니야. '인간은 파괴될 순 있어도 패배할 순 없어.'
p. 94
It is silly not to hope, he thought.
(희망하지 않는 건 어리석은 짓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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