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50플러스 칼럼 '시와 함께'

김흥숙의 '시와 함께1"(2018년 5월 25일)

divicom 2018. 5. 25. 17:31

오늘부터 매달 한 편씩 '시와 함께'라는 제목의 칼럼을 서울시 50플러스재단 포털의 '50+매거진'에 게재합니다.

'50+매거진'에는 이미 여러 필자의 많은 글들이 게재되고 있으니, 꼭 한 번씩 찾아봐 주시기 바랍니다.


'서울50플러스재단'은 50세가 넘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노년에 연착륙할 수 있게 돕는 기관이고

'50+매거진' 또한 성숙기에 들어선 독자들을 위한 정기간행물입니다.


'노화'는 누구에게나 찾아오지만 누구에게나 낯선 과정...

제 글이 외로운 노화의 길에 선 누군가의 동무가 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https://50plus.or.kr/detail.do?id=1025057



[김흥숙의 시와 함께 1] 나이와 함께 지혜가 오네

오십 세가 되고 싶어 한 적이 없는데 오십 세가 되었습니다. 그냥 살기만 했는데 오십이 넘었습니다.

서른셋, 마흔넷, 쉰다섯, 예순여섯... 마음은 그대로인데 마음을 담고 있는 몸은 자꾸 달라져 마음과 몸의 거리가 갈수록 멀어집니다.

 

아, 우리는 모두 늙고 있습니다!

 

어려서는 어른이 되고 싶었습니다. 어른이 되면 해야 하는 일로부터 놓여나는 줄 알았습니다.

싫은 과목과 숙제로부터 해방돼 자유롭게 살 수 있을 테니 어서 어른이 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어른이 되니 나날은 더욱 부자유해졌습니다. 아들이거나 딸이었던 사람이 사위, 며느리가 되고 아버지, 어머니가 되고, 정체가 늘어날수록 해야 할 일도 늘었습니다.

 

 

해야 할 일을 안 하는 아이는 꾸지람을 들으면 그만이지만, 해야 할 일을 안 하거나 잘못하는 어른은 훨씬 더 가혹한 벌을 받는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세상의 많은 사람들은 ‘나’보다는 내 명함에 관심이 있고, 명함이 없어지면 관심과 사랑도 함께 사라진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사람들이 오십 너머를 두려워하는 건 그런 것을 알게 되기 때문이겠지요.

누구나 삶의 끝에 죽음이 있다는 걸 알지만 아무도 죽음을 피할 수 없는 것처럼,

명함 없는 시간, 아무도 나를 찾지 않는 시간이 온다는 걸 알면서도 피할 수가 없으니까요.

그러니 늙음은 때로는 두려움과 슬픔이 되고 때로는 분노와 탄식이 됩니다.

 

그런데 이런 두려움과 분노, 슬픔 등의 뿌리엔 우리의 건망증과 관성이 있는 것 아닐까요?

어린 시절부터 꿈꾸던 자유를 누리게 되고, 해야 하는 일이 아닌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게 되었는데,

자유를 누리며 하고 싶은 일을 하는 대신 ‘하던 일’을 못하게 되었음을 슬퍼하는 것 아닐까요?

2년 전 서울시가 50플러스재단을 만든 건 바로 그 때문이겠지요.

우리가 꿈꾸던 자유로운 시간이 찾아왔으니 생애의 남은 절반 동안엔 하고 싶은 일을 하라고 상기시켜 주는 것이지요.

 

그러고 보면 오십은 참 좋은 나이, 오십 너머는 참 좋은 시절입니다.

주름살과 얼룩 덕에 마침내 얻게 된 자유의 시간이니까요.

박경리 선생(1926-2008)의 시 ‘아침’의 마지막 연에 그 자유의 모습이 보입니다.

 

“커피 한 잔 마시고

벽에 기대어 조간 보는데

조싹조싹 잠이 온다

아아 내 조반은 누가 하지?

해는 중천에 떴고

달콤한 잠이 돈다.” --박경리 시집 <도시의 고양이들>, 동광출판사

 

나이 들어도 먹고 사는 게 너무 힘들면 자유를 누릴 수 없지만, 먹고 살 수만 있다면 누구나 이 시의 주인공처럼 자유로워질 수 있겠지요.

 

박경리 선생은 장편소설 <토지>의 작가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소설보다 먼저 시를 쓰셨다고 합니다.

그러다 우연히 알게 된 작가 김동리 선생으로부터 소설을 쓰라는 조언을 들었고 1955년 단편소설 ‘계산’을 ‘현대문학’에 발표한 후 수많은 소설과 시, 수필을 쓰셨습니다. 지난 12일 박경리 선생의 10주기엔 강원도 원주 토지문화관에서 선생의 동상이 제막됐습니다. 6.25전쟁 중이던 스물네 살 때 남편과 사별한 후 가장으로서 작가로서 얼마나 치열하게 사셨을지, 감히 짐작할 수조차 없습니다. ‘나무위키’의 박경리 편에 보면 선생은 2007년 말에 폐암 진단을 받았지만 치료를 거부하고 이듬해 만 82세를 일기로 돌아가셨다고 합니다. 선생은 1969년부터 1994년까지 26년 동안 <토지>를 집필하실 때도 암을 앓으신 적이 있으니 암도 인생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이셨던 건지 모릅니다. 선생의 시 ‘諦念(체념)’과 ‘씩씩하게’를 읽으면 자신을 다스리는 선생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합니다. 두 시 모두 지식산업사에서 나온 시집 <못 떠나는 배>에 수록돼 있습니다. (아래 시에 나오는 한자는 순서대로 ‘자유’ ‘해방’ ‘일체중생’ ‘중생’입니다.)

 

타일렀지

이곳은 나의 自由

解放된 곳이라고” --‘체념’

 

一切衆生 모두 고달픈 것을

나 또한 衆生의 하나이니

슬퍼 말어라“ -- ‘씩씩하게’

 

오십 너머 나이와 함께 오는 것은 주름살과 얼룩과 자유뿐일까요? 아닙니다.

1923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아일랜드 시인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1865–1939)는 나이와 함께 오는 것은 ‘지혜’라고 말합니다.

 

“시간과 함께 지혜가 오네

 

잎은 많아도 뿌리는 하나라네;

젊은 시절을 채우던 거짓의 나날들

시선에 취해 잎사귀와 꽃을 흔들었으나;

이제는 진실 속으로 시들어가도 되리”

--<W.B. Yeats: Selected Poems>, Penguin Books

(원제: The Coming of Wisdom with Time: 필자 번역)

 

예이츠의 말처럼 젊어서는 잎사귀처럼 많은 일을 벌이고 잎사귀가 바람에 흔들리듯 흔들리곤 했습니다.

중요한 것과 중요하지 않은 것을 구별하지 못해 남들이 좋다고 하는 것을 좇느라 바빴습니다. 

그렇지만 무엇이 중요한지 이젠 압니다. 남들이 아무리 좋다고 하는 것도 내게는 좋지 않을 수 있고, 

남들 눈에 무의미하게 보이는 것이 내게는 최상일 수 있다는 것을.

그러니 공자는 오십을 ‘하늘의 명을 깨닫는 나이(五十而知天命)’라고 하셨겠지요.

그냥 살기만 했는데 찾아와 준 오십 너머, 미소를 띠고 천천히 ‘진실 속으로 시들’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