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구월의 끝은 추석 명절입니다.
산 사람들과 죽은 사람들이 한 자리에 모여 지난날을 돌아보고
오늘에 감사하며 훗날을 생각하는 계절...
가느다란 빗줄기에서,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 사이에서,
어린아이의 웃음소리에서... 세상의 이곳저곳에서 구월이 떠나가는 소리가 들립니다.
서울시 50플러스포털에 연재하는 '김흥숙의 시와 함께'에
'구월이 가는 소리'라는 제목을 붙인 이유입니다.
아래 글에는 패티김의 '구월이 가는 소리'와 이문세 씨의 '시를 위한 시'
지미 스트레인의 '찰나'가 인용돼 있습니다.
링크를 클릭하면 그 노래들을 들을 수 있습니다.
'시를 위한 시': https://www.youtube.com/watch?v=CLBwIXoeuG4
'9월의 노래': https://www.youtube.com/watch?v=1K9-JgUz_p8
'찰나": https://www.youtube.com/watch?v=s_vCIG23U88
[시와 함께 5] 구월이 가는 소리
혹독한 여름 끝 구월이 오는 소리도 못 들었는데 어느새 구월이 떠나갑니다. 여름 절반 가을 절반, 이번 구월은 여름도 아니고 가을도 아닌 ‘여을’이었다고 할까요? 언젠가 구월을 기다리며 듣던 노래를 구월 막바지에 듣습니다.
구월이 오는 소리 다시 들으면
꽃잎이 피는 소리 꽃잎이 지는 소리
가로수에 나뭇잎은 무성해도
우리들의 마음엔 낙엽이 지고
쓸쓸한 거리를 지나노라면
어디선가 부르는 듯 당신 생각뿐(하략)
이희우 씨가 노랫말을 쓰고 길옥윤 씨가 곡을 써서 패티김 씨가 부른 가요 ‘구월의 노래’입니다. 대중가요로 분류되지만 가곡 같습니다. 국어사전에 보니 ‘대중가요’는 ‘널리 대중이 즐겨 부르는 노래’이고, ‘가곡’은 ‘시에 곡을 붙인 성악곡’이라고 합니다. 그러고 보니 가곡 같은 가요들의 가사는 시와 다르지 않습니다. 미국의 대중 가수 밥 딜런이 2016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것도 노랫말이 시임을 입증한 것이겠지요. 노래가 된 시 중에 ‘시를 위한 시’가 있습니다. 작고한 지 십 년이 된 이영훈 씨가 작사, 작곡해 이문세 씨가 부른 노래입니다. 이영훈 씨의 몸은 우리를 떠났지만 그의 노래는 여전히 살아서 우리를 위로합니다.
바람이 불어 꽃이 떨어져도
그대 날 위해 울지 말아요
내가 눈 감고 강물이 되면
그대의 꽃잎도 띄울게
나의 별들도 가을로 사라져
그대 날 위해 울지 말아요
내가 눈 감고 바람이 되면
그대의 별들도 띄울게
이 생명 이제 저물어요
언제까지 그대를 생각해요
노을진 구름과 언덕으로
나를 데려가줘요(하략)
여름 열기에 달궈졌던 몸에 서늘한 바람이 스며들면 가로수길보다 마음에 먼저 낙엽이 지고 그리운 사람들이 생각납니다. 여름에 듣지 않던 음악을 듣고 더위에 제쳐두었던 시집을 집어드는 이유입니다. 봄은 아지랑이로 오지만 가을은 노을 진 하늘로 옵니다. 가을 하늘은 커다란 편지지. 지상의 사람들 모두 함께 편지를 써도 남을 편지지입니다. 하늘에 쓴 편지들 중에서도 고정희(1948-1991) 시인의 편지는 언제나 가슴을 뭉클하게 합니다. 여성운동가로 민중운동가로 치열하게 살며 만인의 평등과 민족, 민중을 위해 시를 쓰던 시인의 가슴 속 뜨거운 사랑이 보입니다.
하늘에 쓰네
그대 보지 않아도 나 그대 곁에 있다고
하늘에 쓰네
그대 오지 않아도 나 그대 속에 산다고
하늘에 쓰네
내 먼저 그대를 사랑함은
더 나중의 기쁨을 알고 있기 때문이며
내 나중까지 그대를 사랑함은
그대보다 더 먼저 즐거움의 싹을 땄기 때문이리니
(하략)
--<고정희 시전집2>, 또하나의 문화
진짜 사랑은 그런 것이겠지요. 보지 않아도 곁에 있다고 느끼며 ‘나중의 기쁨을 알고 먼저 사랑’하는 것. 누군가에게는 편지지이고 누군가에게는 도화지인 하늘, 원고지에 시를 쓰던 시인은 ‘하늘원고지’에서 ‘그대’를 보았다고 고백합니다.
하늘원고지에 그대가
흔들리며 오네
새벽안개 서린 하늘원고지에 그대가
눈물안개로 흔들리며 내게로 오네
(중략)
사무치며 오네
달 뜨는 하늘원고지에 그대가
눈물달빛으로 사무치며 내게로 오네
(하략)
--위와 같은 책
사랑해본 사람은 누구나 압니다. 기다리는 내 눈이 닿는 곳마다 ‘그대’가 있다는 것. ‘하늘원고지’에도, 눈물어린 달빛에도, 홀로 흔들리는 코스모스에도, 노점상의 사과에도 ‘그대’가 있습니다. 우리는 그 아름답고 슬픈 순간과 순간 사이를 비틀거리며 살아갑니다. 인디 음악가 지미 스트레인의 ‘찰나’는 바로 그 순간들을 노래합니다.
눈을 감으면 사라지는 이 순간처럼
눈을 뜨면 잊혀질 어제처럼
아버지와 함께 걷던 그날들은
뒤돌아보니 모두 찰나였다
긴 시간동안 살아있음을 잊고
죽음을 고민하며 삶을 허비했네
고독에 몸부림치던 긴 밤들은
뒤돌아보니 모두 찰나였다
삶은 손금을 따라 떠나는 산책
나 비틀거린 덕에 너를 만났네
(중략)
우리 안의 뜨거웠던 불꽃도
시가 되어 날아가 버린 숨결도
기억나지 않는 이름들처럼
뒤돌아보니 모두 찰나였다
베개를 적시던 슬픈 공상들이
눈앞에 꽃이 되어 만발한 오늘
나의 사랑도 그리움도 모두 다
뒤돌아보니 모두 찰나였다
(중략)
찰나일거다 결국 모두 다
날아갈 향기다 우리 모두가
사라질 온기다 머지않아서
찰나일거다 참 다행이다
--지미 스트레인 4집 <지미 스트레인>
떠나가는 구월을 돌아봅니다. 기다림과 슬픔, 그리움과 반가움의 ‘찰나’들... 웃음으로 가득 찼던 구월이든 베개를 적시게 했던 구월이든 ‘결국 날아갈 향기’ 같은 가을의 첫 장이 넘어갑니다. ‘찰나’여서 아쉽지만 ‘찰나’여서 다행인 구월, 일 년을 기다려야 다시 만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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