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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이라는 것 (2010년 2월 24일)

divicom 2010. 2. 24. 09:06

신문에 칼럼을 쓰다 보면 우편이나 전자 메일로 독자의 편지를 받는 일이 종종 있습니다. 제가 쓴 글을 읽고 공감을 나타내는 분, 제 생각과 다른 의견을 보내주는 분, 제가 쓴 주제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개진하는 분... 인터넷의 놀라움은 그 시공을 뛰어넘는 힘에 있습니다. 제가 쓴 글에 대해 외국에서 보내오는 메일을 볼 때면 그 사실을 더욱 절감하게 됩니다.

 

오늘 아침에 받은 이메일 중에 "Why do you reject God?"라는 제목의 글이 있었습니다. 한국에서 선교사로 활동 중인 미국인인데 광주에서 교회를 시작하기 위해 지금은 미국에서 기금을 모으고 있다고 합니다. 제가 코리아타임스에 6년째 연재하고 있는 칼럼 'Random Walk'에 2007년에 쓴 글을 보고 보낸 글입니다. 그때 저는 두 차례에 걸쳐 "God Is Not Responsible"이라는 제목의 글을 쓴 적이 있습니다. 중동에 선교하러 갔다가 고초를 겪는 한국 사람들에 대해 쓴 글입니다. 그 글을 읽어보고 싶으신 분은 www.koreatimes.co.kr의 opinion페이지로 가서 'Random Walk'를 찾아보시면 됩니다. 2007년에 쓴 글이니 한참 뒷페이지로 가셔야 할 겁니다.

 

미국 선교사의 메일을 읽으니 제일 먼저 글의 힘 또는 생명력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3년 전에 쓴 글, 그것도 한국에서 발행되는 영자신문에 쓴 글을 "이제 막 읽고 (I just read your article)" 코멘트를 보냈으니 말입니다. 한번 인터넷에 올라간 글은 언제나 현재성을 갖는구나, 영원히 사라지지 않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며 제가 쓰는 글에 대해 더욱 엄격해져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두 번째로는 국경을 넘나드는 인터넷의 힘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이미 유튜브나 여러가지 방식으로 증명된 것이긴 하지만 인터넷의 위대한 점은 누구에게나 기회를 준다는 것일 겁니다. 아프리카 말라위에 사는 소년이든 뉴욕 한복판에 사는 할머니든, 서울의 누옥에 사는 중년 여인이든 누구나 자신의 목소리를 세상에 내놓을 수 있다는 겁니다. 

 

세 번째로는 이 미국인이 광주에서 교회를 시작하지 말았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선교사가 메일에 쓴 것을 보면 교회 하나도 아니고 여러 개를 시작하려는 것 같은데 (We are currently in America raising support to go start churches in the city of Gwang-Ju.), 우리나라에 이미 충분히 많은 교회와 선교사가 있다는 걸  모르는 건지... 안타까웠습니다. 답장을 보내어 우리나라의 현실을 알려줄까 하다가 이 분이 보낸 메일의 제목과 내용을 다시 보고는 그만두었습니다.  "Why do you reject God?"라는 제목도 다분히 시비조이지만 메일의 내용은 이분이 대화보다 설교를 원한다는 걸 보여주고 있었거든요. 


네 번째로는 글을 쓰는 방식을 고르는데 신중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분처럼 일방적인 어투로 자신의 믿음을 설파하기보다는 함께 생각해보자고 권유하는 것이 좋겠다는 겁니다.

 

마지막으로 선교란 무엇인가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선교란 자신의 믿음을 다른 사람이 받아들일 수 있게 설득하는 일일 겁니다. 누군가를 설득하려면 우선 그 사람에 대해 알아야 합니다. 상대를 모르고 자신의 믿음만을 설파할 때, 그건 그냥 흘러가는 말에 불과할 겁니다. 

 

먼 곳의 독자 덕에 여러가지 생각으로 시작한 하루, 마침 밴쿠버로부터 스피드스케이팅 1만 미터 부문에서 이승훈 선수가 금메달을 땄다는 소식이 들려옵니다. 오늘도 축복받은 하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