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노무현 대통령의 5주기였습니다. 김기덕 감독이 그를 기리는 영화를 만들어 개봉했습니다. <변호인>을 본 분들, 보지 못한 분들... 두루 <일대일>을 보면서 나라와 우리를 생각해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아래는 오늘 아침 한겨레신문 '삶의 창'에 실린 제 칼럼입니다.
비겁을 벗어나는 길
김기덕 감독의 영화 <일대일>이 개봉했습니다. 양우석 감독의 <변호인>이 나온 게 지난해 12월이니 반년도 못 되어 다시 노무현 전 대통령을 기리는 영화가 나온 겁니다. 김 감독은 노 전 대통령의 ‘깊은 뜻’을 헤아리기 위해 이 영화를 연출했다고 합니다. 그의 제작노트를 보면 그 뜻을 알 수 있습니다.
“<일대일>은 내가 살고 있는 이곳, 대한민국에 대한 영화다. ‘나 역시 비겁하다’는 것을 먼저 고백하면서 이 시나리오를 썼다. 나는 이 땅에 살면서 매일 충격을 받는다. 부정부패도 성공하면 능력이 된다.”
영화 도입부에서 살해되는 여고생의 이름이 ‘민주’인 걸 보면 김 감독이 하고 싶은 말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일대일>의 관객 수를 점치긴 이르지만 이 영화를 보는 사람들 모두 김 감독처럼 ‘나 역시 비겁하다’고 깨달으면 좋겠습니다.
비겁에는 능동적 비겁과 수동적 비겁이 있습니다. 제가 기자 노릇을 하던 시절을 돌이켜보면 앞장서서 청와대를 기쁘게 하는 기사를 쓰려는 기자들도 있었지만, 청와대에 잘 보이고 싶어 하는 윗사람이 시키는 대로 쓰는 수동적 비겁자들이 훨씬 많았습니다.
세월호의 침몰과 승객 구조의 실패는 능동적 비겁과 수동적 비겁이 한데 어울려 초래한 비극입니다. 능동적 비겁자로 밝혀진 선장과 선원들에게만 책임이 있는 것이 아니라 ‘좋은 게 좋은 거’라며 부정, 부패, 부실에 눈감은 사람들, 정부와 기관들의 잘못을 보고도 침묵한 우리 수동적 비겁자들도 공범입니다.
다행히 비겁하게 살던 사람도 비겁을 벗어날 수 있습니다. 누가 시키든 옳지 않은 일은 하지 않고, 잘못된 걸 보면 잘못됐다고 하고, ‘무엇이 이익인가’보다 ‘무엇이 옳은가’를 추구하면 비겁자의 삶을 끝낼 수 있습니다.
물론 비겁이 체질화되어 끝내 변하지 않는 사람도 있겠지요. 세월호 승객의 가족들이 여의도 한국방송으로 찾아갔을 때는 못 본 척하다가 그분들이 청와대 쪽으로 가니 그때에야 그곳에 나타나 사과한 길환영 <한국방송> 사장, <에스비에스>의 ‘그것이 알고 싶다’ 팀이 세월호 관련 프로그램을 제작하려 하자 제작을 중단시켰다가 피디들이 총회를 열 것이라는 말을 듣고 중단을 철회한 에스비에스의 높은 사람들이 좋은 예일 겁니다.
세월호 참사의 주요 원인 중 하나가 낙하산 인사로 인한 전문성 결여라는 게 밝혀졌지만 여전히 계속되는 낙하산 인사, 희생자 수습을 책임진 해양경찰을 해체한다고 전격 발표하여 유가족들을 망연하게 하고 곧바로 남의 나라 원자로 설치를 보러 간 대통령, 세월호가 침몰한 날 재가동 승인된 국내 최고령 원전 고리 1호기의 수명을 10년 더 늘리려고 눈치 보고 있는 관계당국과 한국수력원자력, 이들 모두 체질화된 비겁을 보여줍니다.
한 나라의 권력자와 그 수하가 능동적 비겁에 젖어 힘없는 사람들을 길들이면 그 나라는 평형을 잃은 배처럼 기우뚱거리지만, 우리에겐 비겁하지 않았던 대통령 노무현이 있고, 그의 뜻을 이어가는 김기덕 감독과 무수한 동행이 있습니다.
게다가 열흘 후엔 비겁에서 벗어날 절호의 기회가 찾아옵니다. 바로 지방선거입니다. ‘부정부패도 성공하면 능력’이 되고 ‘돈 있고 백 있는 사람 옆에 있어야 이익’이라지만 ‘돈과 백’을 거부하고 바르게 살아온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에게 투표하면 비겁의 사슬을 끊을 수 있고 그래야 세월호 승객들의 희생에 답할 수 있습니다. 다른 것 보지 말고 사람 보고 투표해주세요! 비겁을 벗어나 ‘사람 사는 세상’으로 가는 첫걸음, 투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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