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노년일기 78: 반려를 잃는다는 것 (2021년 5월 25일)

divicom 2021. 5. 25. 08:54

어제 세상을 뿌옇게 채웠던 먼지를 오늘 비가 지우고 있습니다.

모든 것엔 끝이 있다는 말과, 끝이 끝이 아니다라는 말이 동시에

떠올라 절로 미소가 지어집니다.

 

젊어선 몰랐거나 인식하지 못했던 것들을 무심코 깨달을 땐

노인이 되는 것은 좋은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노년에 이를 때까지, 또 노년에 들어서 겪은 무수한 일들 덕에

이런 것을 알게 된 걸까, 경험은, 아주 고통스러운 것조차

우리를 키우는 것인가 하는 생각을 할 때도 있습니다.

 

살아간다는 것은 여러 가지를 경험하는 것입니다.

태어남과 죽음, 젊음과 늙음, 좋은 것과 싫은 것, 얻음과 잃음,

기쁨과 슬픔... 죽는 순간까지 경험은 계속됩니다. 

 

현명한 사람에게 경험은 자유를 향해 나아가는 걸음을 뜻하지만

어리석은 사람의 경험은 대개 제자리걸음과 낭비를 뜻합니다.

그러니 비슷한 부모에게서 태어나 비숫한 조건의 삶을 살아도

죽음에 이를 때쯤엔 아주 다른 사람들이 되는 것이겠지요.

 

나이가 들어가니 반려를 잃는 친구들도 늘어납니다.

아직 사별하지 않은 부부라고 해서 영영 헤어지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젊은이들의 동거에 깃드는 새가 이별이라면

노인들의 동거에 깃드는 새는 사별일 테니까요.

 

젊어서든 늙어서든 이별은 아프고, 살아서 다시 볼 수 없고

만질 수 없다는 점에서 사별은 더더욱 아픈 것이지만

피할 수 없는 사별이라면 젊어서보다는 노년에 겪는 것이 낫겠지요.

무엇보다 '사별'은 남는 사람의 언어라는 것과  

삶의 고단함에 대해 아주 잘 알게 되니까요. 

 

반려를 잃은 친구들과 반려를 잃을 친구들 모두

사별의 슬픔 너머 해방과 자유를 생각하며,

눈물 젖은 미소를 지을 수 있기를...

그리하여 우리 모두 일 인치씩 현명해지기를...

 

어제 세상을 채웠던 먼지와

오늘 먼지를 지우는 비와

다시 찾아올 먼지와 비...

그 모두를 볼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