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행
다꾸, 다꾸러, 별다꾸 (2025년 12월 23일)
divicom
2025. 12. 23. 11:48
산책길에 단골 북카페 부근에 이르렀을 때 평소엔
한적하던 곳에 젊은 여성들이 모여 웅성거리는 걸
보았습니다. 건물의 1층에 볼 일이 있어 온 사람들
같은데 표정을 보니 나쁜 일이 일어난 것 같진 않았습니다.
카페에 가니 아까 웅성거리던 여성들과 비슷한
분위기의 손님들이 자리를 채우고 있는데, 다행히
제가 늘 앉던 구석자리는 비어 있었습니다.
그 손님들은 대개 혼자 와서 스마트폰을 보고 있었습니다.
커피를 마시고 나가 왔던 길을 되돌아가다 아까
사람들이 웅성거리던 곳에 이르니 그때 그 여성들이거나
그들과 비슷한 분위기의 사람들이 긴 줄을 이루고
서 있었습니다. 건물 벽에 붙은 포스터를 보고 그들이
'다꾸'용 물품을 구입하기 위해 서 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회비 12,000원을 내고 들어가 자신이 원하는 스티커,
마스킹 테이프, 문구류 같은 다꾸 용품을 구매하는 것이지요.
이 블로그 방문자들 중엔 '다꾸'가 무엇인지 모르는
분들이 많을 겁니다. '다꾸'는 '다이어리 꾸미기'의
준말이고 다꾸하는 사람들은 '다꾸러'로 불립니다.
'다이어리? 일기? 일기를 쓰고 싶으면 쓰면 되지 꾸미는
건 뭐야? '라고 시비조로 묻는 사람은 이 시대 젊은이들
사이에 자리잡은 '별다꾸(별걸 다 꾸미다)' 트렌드를
모르는 사람입니다.
'다꾸러'들은 동아리를 만들어 활동하기도 하고
SNS를 통해 소통하며 서로의 다이어리를 자랑하기도
합니다. 이미 열 권의 다이어리를 소유한 다꾸러가
너무도 '힙한' 신상 다이어리를 발견해 또 한 권 살 거라고
자랑한 것도 보았습니다.
이 트렌드의 현장을 직접 보고 나니 생각이 많아지고
안쓰러운 마음이 듭니다. 다꾸러들은 자신의 개성과
취향을 드러내기 위해 다꾸를 한다지만, 이런 식이
아닌 방식으로 취향과 개성을 드러낼 순 없을까요?
혹시 어린 시절부터 경쟁에 내몰려 아이답게 살지
못해 지금이라도 아이 같은 방식으로 스스로를
위로하는 것일까요? 다꾸를 통해 힐링을 한다는데
다른 사람의 뛰어난 다꾸를 보고 오히려 스트레스를
받는 건 아닐까요?
다꾸는 결국 남에게 보여 주는 것이니 다이어리에는
남이 보아도 되는 말만 쓰는 걸까요? 그러면 진짜
자신과의 대화는 어떻게 할까요? 2, 3, 40대 여성들이
다꾸를 통해 힐링을 한다면 또래 남성들은 어떻게
힐링을 할까요...
다꾸 트렌드를 접하고 나니 TV 상담 프로그램에 부부
문제나 육아 문제를 들고 나와 훌쩍이던 젊은 엄마들을
이해할 것 같습니다. 그들 대부분은 아직 부모 노릇을
하기엔 너무 큰 내면의 문제와 씨름하는 사람들이라는 걸.
다꾸를 통해서든 별다꾸를 통해서든 젊은 여성들이 어서
자신을 벗어나 한 사람 몫의 희로애락을 감당할 수 있게
되길 바랍니다. 그때까지는 결혼하지 말기를, 결혼은
하더라도 아이는 낳지 말기를, 다꾸는 해도 좋지만 다꾸에
탐닉하다 '다 꾸러' 다니는 삶을 살진 말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