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아그네스' 윤석화 씨 별세 (2025년 12월 19일)
한 사람이 이룬 것과 그 사람의 죽음 사이엔 어떤
관계가 있을까요? 아직 이룰 능력이 많은 사람이라도
이미 이룬 것이 많으면 죽음이 찾아오는 걸까요?
걸출한 사람이 죽음에게 갈 때는 늘 아깝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 사람이 이 세상에 좀 더 머물며 많은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을 주면 좋을 텐데 하는 바람
때문입니다.
배우 윤석화 씨가 오늘 아침 이승을 떠났다는 소식을
접하고 바로 그런 안타까움을 느꼈습니다. 그는
제 세대 사람 중 가장 스타성 있는 인물이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말을 삶으로 증명해 보인 사람입니다.
향년 69세... 일흔 혹은 70대라는 나이가 그 아름다운
사람에겐 어울리지 않아 그 문턱에서 떠난 것일까요?
서울에서 태어나 1975년 연극 '꿀맛'으로 데뷔한 그는
'신의 아그네스', '햄릿', '딸에게 보내는 편지' 등으로
이름을 알린 후 선배 배우 박정자, 손숙과 함께 연극계를
대표하는 여배우가 되었고, 뮤지컬, 영화, 드라마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했습니다. 자신의 이름(석화:石花)을
딴 돌꽃컴퍼니를 설립했는가 하면 아들딸을 입양해
국내 입양의 중요성을 환기했으며, 수많은 상도 받았습니다.
시대를 빛냈던 윤석화 씨에게 감사하며 부디 평안과 자유를
누리기를 기원합니다. 아래는 한겨레신문 기사입니다.
링크를 클릭하면 기사 원문을 볼 수 있습니다.
https://www.hani.co.kr/arti/culture/music/1235482.html
‘영원한 아그네스’ 윤석화 별세…생전 “배우는 평생 배우는 사람”

19일 별세한 배우 윤석화(69)는 건강이 악화한 뒤에도 무대를 향한 열정을 놓지 않았다.
2022년 10월 뇌종양 수술을 받은 뒤 투병 사실을 공개했던 고인은 이듬해인 2023년
연극 ‘토카타’에 5분 정도 우정 출연하며 관객과 작별 인사를 나눴다. 선배 배우
손숙(81)의 연극 인생 60돌을 기념한 이 연극에 짧게 출연한 게 그의 마지막 무대가 됐다.
1956년 서울 태생인 고인은 1975년 연극 ‘꿀맛’으로 데뷔한 이후 연극과 뮤지컬, 드라마와
영화에 출연했다. 주요 활동 무대는 연극과 뮤지컬 등 관객과 얼굴을 맞대고 호흡하는
공연장이었다. 2000년대 대학로에 ‘여성 연극 붐’을 일으켰고, 1세대 뮤지컬 배우로서
국내 무대에 뮤지컬이 뿌리내리는 데 기여했다.
그가 배우로서 입지를 다진 작품은 1983년 연극 ‘신의 아그네스’였다. 모두 532회
공연에 출연한 윤석화는 이 작품으로 한국 연극 사상 최초로 10만 관객을 돌파하며
흥행 기록을 새로 썼다. 1992년엔 모노드라마 ‘딸에게 보내는 편지’로 강렬한 카리스마를
선보였고, 이후에도 ‘덕혜옹주’ ‘나, 김수임’ ‘마스터 클래스’ 등 화제를 모은 작품들에
연달아 출연하며 연극 전성기를 이끌었다. 2005년 삭발 투혼을 발휘하며 열연한 ‘위트’로
대학로에 여성 연극 붐을 일으켰다.
뮤지컬 ‘아가씨와 건달들’ ‘사의 찬미’에 이어 국내 대극장 뮤지컬의 효시로 기록된
‘명성황후’ 초연(1995년) 당시 주연을 맡았다. 이후에도 ‘넌센스’ ‘브로드웨이 42번가’ 등의
작품에서 관객을 사로잡으며 국내 뮤지컬 시장이 굳건하게 뿌리를 내리는 데 기여했다.
연기에 앞서 한국방송(KBS) 공채 성우로 활동한 윤석화는 1977년엔 “하늘에서 별을
따다/ 하늘에서 달을 따다/ 두 손에 담아드려요~”로 시작하는 중독성 강한 시엠(CM)송으로
대중의 귀를 사로잡았다.
2000년 세계적 연출 거장 로버트 윌슨과 작업했고, 2011년 영국 웨스트엔드에 진출해
연극 ‘여정의 끝’, 올리비에상 수상작인 뮤지컬 ‘톱햇’ 등의 제작자로도 활약했다. ‘나는
너다’(2010), ‘해롤드와 모드’(2021) 등 직접 연출한 연극 작품들도 좋은 평가를 받았다.
상복도 많았다. 백상예술대상 여자 연기상(1984), 서울연극제 여자 연기상(1991),
배우협회 선정 제1회 올해의 배우상(1997), 이해랑 연극상(1998), 대한민국문화예술상
연극무용부문상(2009) 등을 받았다.

“소극장 무대에 선다는 것은 마치 사막 한가운데 혼자 발가벗고 서 있는 것처럼
두려운 일입니다. 제 숨소리 하나하나까지 관객에게 다 드러나니까요.” 그는 생전
한겨레와 한 인터뷰에서 연극을 “대답되어질 수 없는 질문”이라고 규정하며
“그 질문에 대해 관객과 함께 생각을 나누고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에게 배우는 ‘평생 배우는 사람’이었다. 그는 “직관과 직감으로 다른
사람의 삶을 표현하는 사람이 광대라면, 광대 짓이 깊어져서 승화된 사람이 배우”라며
“그래서 배우는 평생 배우는 사람이라야 한다”는 배우론을 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