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행
차인현 신부의 삶과 음악 1 (2025년 10월 25일)
divicom
2025. 10. 25. 12:28
몇 년 만일까요, 제가 마이크를 든 것이?
5년 7개월 동안 진행했던 tbs의 '즐거운 산책
김흥숙입니다'를 그만둔 게 2017년 가을이고,
그 후엔 가끔 도서관이나 주민센터의 초청으로
강의를 했지만 그마저도 코로나 후엔 그만두었습니다.
세상이 날로 소란스러워지고 천박해지는 것 같아
칩거하듯 동네에만 머물렀는데, 그날은 서울 한복판
정동에까지 나갔으니 제 일상이 제대로 깨뜨려진
날이었습니다.
정동에 나가 마이크를 든 것, 그건 모두 한 번도
만나뵌 적 없는 한 신부님과 그분을 기리는 한 권의
책 때문이었습니다. 그분은 차인현 알로이시오 신부님.

생전의 차인현 신부님. 박홍철 신부 제공
그분이 살아계실 땐 그분을 몰랐고 제가 그분 때문에
안하던 짓을 하게 될 거라는 것도 몰랐습니다. 그저
주변 사람들 입에 신부님의 함자가 오르내리는 걸 들으며
북한산 아래 어딘가에 꼬장꼬장한 은퇴 신부님 한 분이
사시나 보다 생각했습니다.
그러다 지난 4월 신부님이 선종하시고, 그분의 격려와
지원으로 북한과 아시아에서 '독일 카리타스'와 함께
개발협력 사업을 추진해 온 '사단법인 봄'이 그분을
기리는 회고록 출간을 서두르며, 그분과 저의 인연이
시작됐습니다.
그리고 제 일상이 깨진 지난 23일에 신부님의 회고록
<차인현 신부의 삶과 음악> 출판 기념회가 정동의
프란치스꼬 회관 1층 산다미아노 카페에서 열렸습니다.
보통 '사단법인 봄'의 행사는 아나운서나 연예인이 진행했지만,
행사 많은 10월에 그런 분을 섭외하기가 어려운 탓에
제가 사회를 맡게 되었습니다.
하필 눈병과 감기 몸살을 겪는 중에 사회를 맡아야 한다는
연락을 받아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책을 만들며
깊이 존경하게 된 차 신부님의 일이 아니었으면 단연코 거부했을
테지만, 신부님을 위한 행사이니 거부할 수가 없었습니다.
가능한 한 컨디션을 회복해 행사장에 가야 하고 그러려면
잠을 잘 자야 한다는 생각에 좋아하는 커피도 이틀 동안은
마시지 않았고 입지 않던 정장을 세탁소에 맡겨 드라이클리닝도
했습니다. 머리는 하얗지만 마음은 젊을 때와 같아, 행사
직전까지도 잘 해낼 수 있을까 불안했습니다. 하늘에 계신 분들,
특히 차 신부님께 제가 사회자 역할을 무사히 해낼 수 있게
해주시라고 기도했습니다.
다행히 출판기념회는 큰 문제없이 끝났고 차 신부님의 동생이신
차연옥 알로이시아 수녀님을 비롯한 여러 분들로부터 따뜻한
말씀도 들었습니다. 그제서야 지난 6월부터 '사단법인 봄'의
상임이사 이승정님과 회고록을 준비하던 날들이 떠올랐습니다.
이승정 이사님이 구해 오신 차 신부님에 관한 온갖 자료와,
신부님을 추억하고 기리는 분들이 쓰신 원고를 이 이사님과
함께 취사선택하고, 목차를 정하고 글을 손보고 사진을 곁들이는
과정을 겪으며 책을 만드는 일은 집을 짓는 일과 같구나
생각했습니다.
이 이사님과 일하며, 대충 그럴싸한 결과물을 만들어 내려는
사람이 많은 이 나라에 아무리 힘들어도 완벽한 것을 만들려는
분이 있구나, 발견의 기쁨도 느꼈습니다.
제가 쓴 책이나 번역한 책들을 낼 때면 그냥 원고를 출판사에
넘기고 마지막 단계쯤에 교정을 보는 게 고작이었음을 생각하니,
제 책을 내준 출판사분들에게 더 한층 고맙고 미안했습니다.
*오늘은 여기까지 쓰고 한 번 더 차인현 신부님과 신부님 회고록에
관해 쓰겠습니다. 저는 가톨릭이 아니지만 차 신부님 같은 분이
저와 동시대를 사셨다는 게 큰 힘이 되고 위로가 됩니다.
신부님 회고록 <차인현 신부의 삶과 음악>은 비매품입니다.
책을 구하시려면 '사단법인 봄'에 문의하시기 바랍니다.
이메일: ngopom@naver.com 전화: 02-744-0741
'사단법인 봄'의 '차인현 기금'에 기부금을 보내고 싶으신 분은
아래 계좌를 이용하시면 됩니다.
하나은행 274-910006-059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