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행
노년일기 263: 용기를 내겠습니다! (2025년 8월 5일)
divicom
2025. 8. 5. 17:19
어려서부터 음력 생일에 미역국을 먹었습니다.
양력 날짜를 알려면 달력에 작게 쓰인 음력 날짜를
확인해야 하는데, 언제부턴가 그 일을 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태어난 날로부터 멀어지며
죽음을 가깝게 느끼기 때문이겠지요.
문득 생일에 대해 생각하게 된 건 수양딸에게서
생일에 맛있는 것을 사 주겠다는 메일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긴 인연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서로의
생일이 든 달만 알 뿐 날짜도 모르는데, 바쁜 생활
중에 생일을 기억해 주니 이미 잔칫상을 받은 것
같습니다.
메일을 보고 나서 저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생각해 봅니다. 갈수록 성취가 드물어지는 데다
발전도 더뎌지고 투지도 약해집니다.
제가 맞서 싸워야 할 가장 큰 적은 바로 저입니다.
그런대로 마음의 평화를 유지하며 살지만 어느 순간
갑자기 마음이 요동칠 때가 있습니다. 오래전에
겪은 일이 남긴 트라우마 때문일까요? 그러나
납득할 만한 이유가 있다고 해서 결과가 정당화될
수는 없습니다.
마음의 평화가 깨지는 순간을 경험하고 나면 저에
대한 실망이 밀려옵니다. 이렇게 오래 살았는데도
나는 왜 이렇게 작고 어리석은가? 어제의 나를 죽여
오늘 좀 더 나은 내가 되는 건 끝내 이루지 못할 꿈인가?
우울해지려는 찰나, 엊그제 티브이에서 본 소녀와
그녀가 외치던 말이 떠오릅니다. "용기를 내겠습니다!"
어떤 프로그램이었는지 소녀의 이름이 무엇이었는지
기억나진 않지만 부산 민락골목시장에서 장사하는 분의
증손녀인 일곱 살 유치원생이었다는 건 기억납니다.
소녀가 할머니의 가게에서 아침을 먹고 달려가 타던
노란 유치원 버스, 그 버스에서 내려 소녀를 맞으시던
수녀님, 소녀와 수녀님이 서로에게 허리를 굽히며
주고받던 "용기를 내겠습니다!"도 생각납니다.
소녀와 수녀, 두 스승의 가르침을 받았으니 포기할 수는
없습니다. 몇 번째 생일을 앞두고 있든, 저의 성장과
자유를 가로막는 제 안의 적을 부수기 위해 "용기를
내겠습니다!" 그래야 수양딸에게 부끄럽지 않은
수양엄마가 될 수 있을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