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행
노년일기 260: 배우의 퇴장 (2025년 6월 22일)
divicom
2025. 6. 22. 07:18
겨우 며칠 누워 지내다 운동화를 신었는데
발이 낯설다 합니다. 발의 불평을 못 들은 척
밖으로 나갑니다. 골목도, 길가의 꽃들과 고양이들도
모두 그대로인 듯합니다.
눕기 전에는 걸어다니던 시장, 버스를 타고 갑니다.
채소와 과일을 싸게 파는 가게들, 쪽파를 다듬고
마늘을 까놓고 팔던 할머니들의 노점도 그대로입니다.
일주일에 한 번쯤 가던 채소 가게. 목청껏 호객하는
사장님, 아무리 여러 가지 채소를 사도 금방 계산해내는
계산원 아주머니, 비닐 봉지에 담긴 채 매대에 누운
로메인과 깻잎과 청경채 모두 그대로입니다.
저는 삶의 무대 위에서 잠시 사라졌다 나타났지만
무대는 그대로입니다. 이번엔 누워 있다 일어났지만
언젠가는 일어나지 못하는 때가 올 거고, 그러면
저라는 배우가 무대에서 영영 사라지게 되겠지요.
우리는 모두 삶이라는 무대 위에서 머물다 사라지는
배우들입니다.스포트라이트를 좀 더 받는 사람이
있고 덜 받는 사람이 있지만, 결국 모두가 사라집니다.
사라진 후 기억된다 해도 시간의 문제일 뿐, 한 번
사라진 배우는 다시 돌아오지 못합니다.
사라짐은 자유입니다. 사라질 존재이니 실존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남들의 시선, 남들이 중요하다고
하는 것들에 구애받지 않고 가능한 한 즐겁고 보람있는
일을 자유롭게, 열심히, 해야겠습니다. 그날이 왔을 때
홀가분하게 사라질 수 있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