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행
아버지의 죽음: 딕 호이트 (2021년 3월 20일)
divicom
2021. 3. 20. 11:10
아침 신문을 보다가 울고 말았습니다.
너무나 많은 고통과 분노와 거짓이 페이지들을
가득 채우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이야기들
때문에 운 것은 아닙니다.
저를 울린 것은 딕 호이트 (Dick Hoyt)의 타계 기사였습니다.
아들을 남겨두고 떠나며 아파했을 딕의 영혼을 위로하며
삼가 그의 명복을 빕니다.
이 기사는 제가 본 최초의 존댓말 기사입니다.
이 기사를 쓴 이용균 기자에게 감사합니다.
Dear Dick,
You did more than your best...
뇌성마비 아들과 함께 달린 40년, 아버지들의 영웅 ‘별’이 되다
‘보스턴 마라톤의 상징’ 딕 호이트 타계

지미 V 끈기상 수상 딕 호이트(왼쪽)가 아들 릭 호이트와 함께 2013년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ESPY 지미 V 끈기상 수상 소감을 말하고 있다. 지미 V 끈기상은 미국 대학 농구코치 지미 발바노를 기린 상으로 스포츠에서 역경을 딛고 일어선 이들에게 주어진다. AP연합뉴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아들 릭을
보통 사람으로 키우고 싶었던 아빠
불굴의 의지로 32차례 레이스
허리에 끈 연결해 철인3종 뛰고
45일 동안 미국 대륙 횡단 기록도
그의 ‘위대한 여정’은 감동이었다
딕 호이트 부부는 1962년 아들 릭 호이트를 낳았을 때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아픔을 겪어야 했습니다. 태어나기 직전, 탯줄이 목을 감았고, 뇌에 산소 공급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병원의 의사들은 뇌성마비 진단을 내렸고 아들이 사실상 식물인간이며, 보호시설로 보내져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호이트 부부는 아이의 눈동자가 방 구석구석을 따라 움직이는 걸 보고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꼭 보통의 아이처럼 키우겠다고 결심했습니다.
헬렌 켈러의 이야기와 비슷합니다. 어머니는 릭의 손가락을 까슬한 사포에 대고 그려가며 알파벳을 가르쳤습니다. 아버지는 2010년 쓴 책에서 “우리 가족이 릭의 웃음과 고갯짓을 이해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고 적었습니다. 식물인간 취급을 받았던 릭은 부모의 정성 덕분에 분별력을 갖췄음을 증명했습니다.
릭이 열 살 되던 1972년, 터프트대학의 공학자들이 릭을 위한 컴퓨터를 만들었습니다. 고 스티븐 호킹 박사와 비슷한 방식으로 릭도 머리를 움직여 원하는 글자를 골라 표현할 수 있게 됐습니다. 부모님이 보는 앞에서 드디어 릭 인생의 ‘첫 한마디’를 표현하는 순간이 왔습니다. ‘안녕 엄마, 아빠’가 아니라 ‘브루인스 파이팅(Go, Bruins)’이라고 적었습니다. NHL 보스턴 브루인스가 스탠리컵 결승에 올라있었죠.
말도, 움직이지도 못하는 릭을 ‘보통 사람’처럼 느끼게 하는 것이 바로 ‘스포츠’였습니다. 스포츠를 함께할 때 릭은, 공립학교 입학을 거부당한 뇌성마비 환자가 아니라 온전한 인격을 가진 보통 사람이 될 수 있었습니다. 1977년 봄, 사고로 몸을 쓸 수 없게 된 라크로스 선수를 돕기 위한 5마일 자선 마라톤 대회가 열렸습니다. 릭이 아버지 딕에게 말했습니다. “아빠, 제가 달릴 수 있다면 장애가 없는 보통 사람의 기분을 느낄 것 같아요.” 군인이었던 아버지는 아들을 위해 달리기로 결심했습니다. 릭은 휠체어에 타고, 딕이 뒤에서 밀면서 뜁니다. 이후 약 40년 동안 온 세상에 ‘할 수 있다’는 영감을 준 ‘팀 호이트’가 탄생하는 순간이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