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추와 국화 (2013년 11월 24일)
오늘 아침 tbs '즐거운 산책'에서는 배추에 대해 생각해 보고 서정주 시인의 시에 곡을 붙인 '국화 옆에서'를 바리톤 황병덕 선생의 노래로 들었습니다. 아름다운 시에 어울리지 않게 듣기 힘든 곡조... 작곡가가 이 시의 유명세에 눌려 '너무 잘 하려고 하다가' 실패한 것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가을을 화려하게 장식했던 국화들... 깊어가는 추위 속에 시드는 모습도 기품 있습니다. 아래에 '들여다보기' 코너에서 읽어드린 제 글 '배추'를 옮겨 둡니다. 한 번 읽어 보시고 풍년 든 배추로 인해 마음 고생하는 농민들 생각하시어 한 포기 더 소비하시면 좋겠습니다.
배추
꽃은 아름답다고 하고 채소는 실하다고 하지만
제 눈엔 배추도 꽃만큼 아름답습니다.
하얀 정수리는 눈부시고 오글오글한 초록치마는 오묘한데요,
두툼한 겉장은 믿음직하고 노르스름한 속살은 아기의 볼 같고...
제가 화가라면 제일 먼저 배추를 그릴 겁니다.
때론 배추의 푸른 잎 사이에 무당벌레나 방아깨비의 시신이 보입니다.
죽는 순간까지 최선을 다하다 삶의 현장에서 저 세상으로 간 것이지요.
그야말로 배추 한 포기 속에 우주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 아름다운 배추를 10만 톤 넘게 폐기할 거라 합니다.
자연재해가 없었던 덕에 배추 풍년이 들자
정부가 ‘수급 안정’을 위해 폐기하기로 했다는데요,
자연재해가 없어 풍년이 든 거라면
배추를 버리는 대신 자연재해로 고생하는 나라들을 돕는 데 써야 하지 않을까요?
방사능 공포 때문에
자기 땅에서 난 채소를 먹지 못하는 일본인들에게 공급할 수도 있겠지요.
정부보다 지혜로운 국민들이 먼저 문제 해결에 나선 것 같습니다.
포장김치 판매는 현저히 줄고 배추 판매는 크게 늘었다고 하니까요.
김장하던 집들이 김장 량을 늘리고 김장 안 하던 집들이 김장을 하게 되면
골치 아픈 배추 풍년이 맛있는 김치 풍년으로 이어지겠지요?
꽃처럼 예쁜 배추를 사다 김장을 해 보시지요.
묵은 김치와 새 김치가 사이좋은 노인과 젊은이처럼 어울릴 밥상,
생각만 해도 침이 고이지 않으세요?